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킴 Apr 10. 2023

저마다의 사과

<사과>



나의 사과


내가 사과를 얼마나 자주 하는지 보려고 카카오톡 검색창에 ‘미안’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봤다. 약속시간에 늦어서, 카톡 메세지에 답장을 늦게 해서, 친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등과 같은 이유로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곧장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친구들은 대부분 괜찮다는 답장을 했다. 주고받은 모든 사과들을 되짚어보면 심각한 상황으로 발전된 적은 없었다. 아주 다행히, 나의 잘못은 대부분 메세지 한 줄의 사과로 사그라들 수 있었다. 


나는 내 잘못으로 인해 상대의 기분이 상할까 봐 두렵다. 그래서인지 사과는 두렵지 않다. 상대가 마음 상하기 전에 먼저 사과를 건네면 기분 나쁜 감정도 조금은 가라앉기 마련이니까, 잘못한 입장에서 먼저 자세를 낮추게 된다. 남은 인연들은 소중하고, 사과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관계를 박살 내버릴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그랬기에 사소한 잘못일지언정 메세지 한 줄로라도 최대한 미안함을 표시한다. 모든 태풍은 사소한 날개짓 하나에서 시작되기 마련이니까.



무거운 사과


하지만 때론 그 사과 한 마디를 하지 못해 상황을 극으로 치닫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어려운 건지, 혹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사과로 끝날 일을 최악으로 끌고 간다. 적반하장의 태도, 뻔뻔한 표정,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으며 쉽게 꺼질 수 있는 불씨를 키우고 만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데, 그들의 태도는 전혀 곱지 않다. 


특히나 개인과 개인 사이가 아니라 집단과 집단 사이의 문제라면 사과는 조금 더 복잡해진다.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히기 시작하고 사과는 어느샌가 수단과 전략, 그리고 번지르르한 허울만 남게 된다. 누군가의 사과는 무겁다. 아니, 사과를 포장하고 있는 알량한 자존심이 무겁다.



무게가 없는 사과


하지만 정말로 가벼운 마음으로, 아니 가볍지도 않은 마음으로 사과의 말을 꺼낼 때도 있다. 바로 회사에서다. 가령 서로 합의된 데드라인을 앞에 두고 상대방은 결과물을 보내주지 않을 때, 책임자인 내 입장에서는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그러면 나는 메일을 켜서 가장 적기 싫은 말을 적는다. 보내주시기로 했던 산출물을 아직 보내주지 않으셔서요. 죄송하지만,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요? 메일을 쓸 때마다 내가 왜 그들에게 죄송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곤 한다. 전송버튼을 누르고 난 후 앞으로는 죄송하지 않은 일에 절대 사과하지 말아야지 다짐해 보지만, 어느 날 또다시  ‘죄송하지만’을 붙이고 있는 날 보면 이전의 다짐이 무색해진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유명한 속담이 있다.  반대로 세치 혀가 사람 잡는다는 말도 있다. 이처럼 말 한 번 잘해서 서로간에 쌓였던 묵은 감정들이 녹아내리기도 하지만 잘못된 말 한마디로 자그맣던 일을 되려 부풀려지기도 한다. 사과도 그렇다. 좋은 사과는 모난 마음을 누그러뜨리지만 못난 사과는 오히려 돌이킬 수 없게 관계를 악화시킨다. 기왕이면 좋은 사과를 해야겠지. 하지만 그 전에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최선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와 사과 마크를 단 그 브랜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