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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Apr 10. 2023

나와 사과 마크를 단 그 브랜드

<사과>

애플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2004년의 일이다. 그 해 나는 미국에서 학교 도서실에 일렬로 늘어선 맥을 처음 만났다. 모니터와 본체가 일체화된 모델이었고, 파란 아크릴로 커버가 씌워져 있는 둥근 컴퓨터였다. 한국에서는 윈도우가 깔려 있는 컴퓨터만 사용해 왔던 터라, 낯선 디자인과 작동 방식에 눈치를 꽤 봐야 했다.


당황스러운 부분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윈도우로 따지자면 시작 버튼이 있는 작업 표시줄이 상단에 고정이 되어 있었다. 이상한 것은 가장 왼쪽의 프로그램 이름이 내가 클릭을 할 때마다 변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창에는 엑스 버튼이 없고, 왼쪽 상단에 세 가지의 동그라미만 떠 있었다.


더군다나 마우스엔 오른쪽 버튼이 없다. 가운데 휠도 없다. 그땐 지금처럼 두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할 수도 없었으니까, 그저 움직이며 딸깍이는 버튼에 불과했다. 정말 다행인 것은 키보드는 내가 알던 그 쿼티 그대로라는 것이었다. 새로 타자 치는 것을 배우지 않아도 되었다.



그 해 한국에 처음으로 아이팟이 수입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아이리버와 옙과 같이 유명한 mp3 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아이팟은 또 달랐다. mp3 플레이어로 묶이기보다는 아이팟 그 자체로 불렸다. 동그란 휠을 돌리면서 볼륨을 줄이거나 키웠다. 폴더 안에 mp3 파일을 넣으면 재생되던 다른 플레이어와는 달리, 아이튠즈라는 프로그램을 깔고 동기화를 해야 했다. 동기화의 개념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아이팟 미니를 거쳐 아이팟 터치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아이폰의 디자인은 아이팟 터치와 얼추 유사하다. 노래를 듣기 위한 기기였던 아이팟은 터치 버전에서부터 스마트해지기 시작했다. 카카오톡을 다운 받을 수 있었고, 인터넷 검색이 가능해졌다. 물론 와이파이가 터지는 장소를 찾아야 했지만, 그 당시엔 그게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모든 애플 기기를 사용해 보진 않았어도 아주 접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는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용했던 아이폰은 X 하나뿐이었다. 아이폰이 말 그대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사진은 아이폰이라느니 디자인은 아이폰이라느니 사람들이 우르르 아이폰으로 몰려갈 때 나는 뒷걸음질 쳤다. 모두가 열광하는 것에 나는 항상 조금 질색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폰 X를 사용하며 아이패드 미니를 사고, 에어팟 프로를 샀다. 내가 애플 기기를 온몸에 두른 순간이었고, 친구들이 앱등이라고 놀려도 허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기기에서 동기화하는 것이 그렇게 편하다던데, 실상 나는 사용하는 내내 감동하는 순간은 잘 오지 않았다. 단 한 가지, 디스플레이가 좋다는 것만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바꿀 때가 왔고, 나는 다시 애플을 떠났다. 아이폰 13은 내 기준에선 성능에 비해 비쌌고, 갤럭시 플립은 재밌어 보였다. 며칠 전에는 에어팟 프로도 떠나 노이즈 캔슬링이 기가 막히다는 보스 QC 이어 버드 2로 왔다. 이제 다시 아이패드 미니만 곁에 남았다. 별로 아쉽지는 않다. 애플이 혁신일 때도 분명 있었는데, 요샌 그저 여느 브랜드 중 하나로 느껴진다. 다시 사과로 돌아갈 날이 올까? 아직까진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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