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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Jun 12. 2023

가족이 손님이 되는 순간

<손님>

집 떠나 산 지 어느덧 10년. 부모님이 살고 있는 그 집은 이제 더이상 나의 집이 아니다. 나는 이제 잠시 들렀다가는 손님이 되어버렸다.



잠시 왔다가는 손님


부산에 들르는 시간은 짧으면 2-3일, 길면 일주일 쯤이다. 백팩 혹은 캐리어에 짐을 채워넣고, 기차역으로 향한 뒤 관광객들과 함께 기차에 몸을 싣는다. 그들과 다른 점은 옷차림과 표정에서 드러난다. 짧은 여행이 기대가 되는지 잔뜩 들뜬 표정과 한껏 차려입은 옷차림이 내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과 나의 공통점이라면, 누군가의 손님이라는 것. 설렘을 가득 안은 사람들 또한 누군가의 손님일 것이고, 나 또한 엄마와 아빠의 손님일테니까.


종착역에 내리면 역 곳곳에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도 눈에 띈다. 그런 사람을 뒤로하고 부지런히 집으로 발을 옮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해 현관과 가장 가까운 방에 가방을 털썩 내려놓는다. 동생이 썼던 방, 이제는 동생도 타지에서 생활하게 되어 그야말로 ‘손님방’으로 변해버린 방. 익숙함과 낯섦이 동시에 훅 들이닥친다. 


그 ‘손님방’ 침대에 몸을 뉘면 평소 썼던 침대와는 다른 강도의 푹신함, 다른 촉감의 이불, 다른 높이의 베개가 존재한다. 침대 옆 책상은 먼지하나 없이 깔끔하다. 너저분한 것들이 잔뜩 있는 내 책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다. 그리고 그런 공간 속에 내가 있다. 내 것은 하나도 없는 공간. 누군가를 맞이하기 위한 공간.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 바로 나다.



가족이자 손님


가족이지만 또한 손님이기에, 나는 손님으로서 최선을 다한다. 나는 엄마와 아빠가 만들어놓은 집안의 규칙을 절대 흩뜨리지 않는다. 가령 설거지를 한 뒤 접시를 포개어놓는 순서라던지, 수건을 접어두는 방식, 취침시간 같은 것들이다. 약간은 불편한 점도 있지만 나는 잠시 지내다가 떠나는 사람이니까 부모님의 생활방식을 최대한 존중한다. 


모든 손님들이 그렇듯, 슬슬 공간이 편해지려고 할 때 쯤 이별의 시간을 맞는다. 어릴 땐, 본가에 내려왔다가 다시 서울로 가는 순간이 서글프기도 했다. 손님으로서 집을 왔다는 게, 내가 완전한 이방인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많이 슬펐다. 그 때 내겐, 가족이 손님이 되어버린다는 게 너무 정없고 삭막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제는 더이상 슬프지 않다. 가족도 손님이 될 수 있다. 가장 친근하고 가장 반가운 손님일 뿐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기차역으로 가는 발걸음이 그렇게 무겁지 않다. 나는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는 손님이니까. 부산역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나는 언제나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는 사람이니까.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불투명한 미래에 확실하게 존재할 다음을 기약해본다. 




조만간 엄마가 서울에 있는 나의 집에 온다고 한다. 우리집의 유일한 단골 손님이다. 손님 맞이를 위해 정성껏 방을 쓸고 닦아야겠다. 나의 가장 친근하고 반가운 손님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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