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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IN MY FILM

안시 에어비앤비에서 만난 가족

호스트의 방 한켠에서 잠을 자고, 같이 밥을 먹고, 함께 TV를 보다.

by 민진킴

Annecy, France


Lac d'Annecy (안시호수)


동네가 아기자기 참 예뻤던 안시. 구시가지에는 조그마한 운하가 흐르고 있고, 운하의 끝에는 만년설이 쌓인 산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이 날은 날씨도 참 좋아서 파란하늘과 파란 호수를 바라만봐도 행복했다. 사실 관광지에 와서 '좋다'고 생각하는건 관광하기 좋다는 말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안시는 살기좋은 곳이었다. 물론 나는 하룻밤을 머물다가는 관광객에 불과했지만, 이런 공기좋은 동네에 커다란 호수가 있고 만년설 쌓인 산을 볼 수 있으며 그 주위를 둘러싼 공원이 있어 주말에는 그 곳에 드러누워 하늘을 바라 볼 수 있는 동네에 산다는 건 굉장히 행복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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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사진과 글 상관없음)


내가 안시에 대한 좋은 기억만 안고 있을 수 있는 건, 거기서 만났던 좋은 가족때문이다.


나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숙소를 구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미친짓이 아닐 수 없었다. 남자 호스트가 있는 집에 방 한칸을 얻어쓰는 것이었는데, 여자 혼자 겁도 없이 그 집을 예약했다.


아무튼 그 집은 에어비앤비의 본질에 충실한 집이었다. 요즘의 에어비앤비는 호스트가 숙박을 위한 방을 꾸미고 게스트들에게 빌려주는 형식이다. 호스트는 그 집에 같이 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예약한 이 집은 말 그대로 호스트의 집 방 한켠을 내주고 있었다. 호스트는 40대 남자였으며, 초등학생 딸 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집안 곳곳엔 가족들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흔한 우리들의 집 같이 냉장고, 화장실, 책장, 벽에 가족사진, 여행 마그넷, 갖가지 낙서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호스트는(정말 안타깝게도 이름이 기억이 안난다..) 나에게 안시 지도를 내어주며 구시가지의 길을 설명해주었고, 저녁을 함께 집에서 먹자고도 해주었다. 그의 두 딸은 정말 귀여웠고 밥을 함께 먹자는 제안이 고마워 안시호수를 보고오는 길에 마카롱집에 들러 마카롱을 샀다. 다행히 아이들은 내가 사온 마카롱을 맛있게 먹어주었다.


호스트가 해준 저녁은 정말 맛있었다. 그야말로 프랑스 가정식이었다. 우리가 김치찌개와 계란말이만 있으면 밥을 뚝딱하듯이, 파스타인지 그라탕인지 무엇인지 잘 모를 그 음식과 샐러드를 함께 뚝딱했다. 밥을 다 먹고 소파에 앉아 프랑스판 더 보이스를 보았다. (미카가 심사위원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싶더니 미카였다)


가족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서로 짧은 영어밖에 하지 못해 아쉬웠다. 몸이 많이 지치기도 했고, 다음 날 스위스로 넘어가야해서 얼른 씻고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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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 호스트가 에어비앤비에 남긴 코멘트를 보니, 나를 '비밀스러운 소녀'라고 평가했더라. 프랑스어로 적어 놓아서 겨우겨우 번역기를 돌린 것이라 정확한 말 뜻은 모르겠지만, 구글이 번역하길 '비밀스러운 소녀'라고 했다. 나는 처음 본 사람과 낯을 많이 가리기 때문에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이 항상 어렵다. 더군다나 나는 하룻밤을 묵고 떠나갈 사람인데, 괜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이 피곤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사진한 장 같이 찍을 걸 그랬다. 하룻밤만 묵고 떠날 사람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많고 많은 사람들 중 한 집에서 밥을 함께 먹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내 성격상 그러기 쉽지 않았겠지만 아직도 아쉬움이 남는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또 언제 그런 경험을 해볼 수 있을까. 좋고 아쉬운 감정이 한 번에 드는 안시이다.




[Info]
안시 필름사진.
네츄라 클래시카 + 10년묵은 수페리아 후지필름.
2016년 3월에 찍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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