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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Aug 04. 2019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듯, '첫고양이'도 있다.

동네 고양이 육묘일기 : 첫눈에 반했다. 사람이 아니라 고양이에게.

친구들과 자신의 첫 고양이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회사에서 기르던 고양이라고 했고, 누군가는 친구네 고양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의 첫 고양이는 살던 동네에서 밥을 주던 길냥이었다.

동네에 워낙 고양이가 많았기에 사실 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첫 만남에서 첫눈에 반해버렸다.




초여름이었다. 에어컨을 켜야 할 정도로 무덥지는 않아서 밤마다 창문을 열어놓고 지내고 있었다. 그 날은 밖에서 들려오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유달리 컸다. 워낙 고양이가 많은 동네니 그러려니 하고 넘기려고 했는데,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아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들려오는 울음소리로 봐선 아기 고양이 같았고, 건물 옆 화단에 있는 것 같았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만큼 울어재끼는 이 고양이가 누군지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혹시 어디 다치거나 아파서 우는 건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울음소리가 거슬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같은 건물에 살고 있는 이웃도 내려와 주위를 이리저리 둘러보고 계셨다. 플래시를 켜고 살펴보니 이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심쿵.

아기 고양이가 어쩌다 여기 오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잔뜩 겁을 먹은 채 동네가 떠나가라 울고 있었다.


"새끼 고양이인가 봐요."

"그러게요. 일단 참치캔 뜯어서 뒀는데 배고프면 먹겠죠."



고양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단골 이야기 중 하나가 '아기 고양이에게 손대지 말라'는 것이었다. 사람 손을 타면 어미가 버릴 수도 있다고, 절대로 손대지 말고 어미가 올 때까지 지켜보라고 했다. 랜선 집사로서 주워들은 지식을 마음껏 발산할 기회였다.


절대로 손대지 말아야지. 어미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런데 어미가 안 오면 어떡하지? 내가 데려가 키워야 하나?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이내 '이 고양이를 잘 키워야겠다.'라는 결론을 냈다. 사료는 어떤 것이 좋을지, 고양이는 어떤 캔을 좋아하는지, '츄르'는 어디서 사는 건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너와 결혼까지 생각했다던 가사가 생각났다. 너를 입양까지 생각했어. 나는 첫 만남에 입양까지 상상하며 나도 드디어 '간택'을 받아보는 줄 알고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키며 설레고 있었다.



하지만 겁을 잔뜩 먹은 아기 고양이는 내 곁에 올 생각은 1도 없어 보였다. 사람을 잔뜩 경계하고 있어서 사람 손을 타게 될 일도 없어 보였다. 먹을 것을 앞에 두었지만 무서워서인지 먹이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았다.



곧 아기 고양이는 도망갔다. 나도, 이웃사람도 집으로 돌아갔다. 사람이 무서워서 도망간 건지, 우리가 떠난 후에 먹이를 먹고 배고픔을 달랜 건지 울음소리는 더 이상 이제 들리지 않았다.



이후 나는 틈만 나면 화단을 서성였다. 혹시 아기 고양이가 다시 오지 않았을까?

아기 고양이는 나의 기대에 부응하듯 다시 와 주었다. 친구까지 데리고서 말이다.


화단은 아기 고양이들에게 좋은 놀이터였다. 풀숲의 잡초들은 고양이들에게 좋은 장난감이었고, 화단의 나무는 고양이들의 발톱 관리를 책임질 훌륭한 스크래쳐였다. 그리고 화단 옆에는 분리수거장이  있었는데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박스도 많았고, 부스럭거리는 비닐도 많았다.


게다가 나는 매일 아기 고양이가 오길 바라며 사료와 캔과 츄르까지 사다 바쳤다. 먹을 것 많고 놀기 좋은 환경 덕에 내 첫 고양이는 친구들을 하나둘씩 데려왔고 몇 마리의 고양이들을 더 만날 수 있었다. 







찰리

박스 뒤에서 우렁차게 울어대던 아기 고양이, 첫눈에 반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꼭 콧수염이 찰리 채플린 같아서 이름을 '찰리'라고 붙여주었다. 찰리가 혼자 박스 뒤에서 애처롭게 울었던 그 날 이후, 찰리는 부모님으로 추정되는 얼룩 고양이와 함께 나타난 적이 있다. 부모님을 찾았구나! 하고 내심 안도했다. 이후 부모님과 함께 살아갈 줄 알았는데 엄마 고양이는 자취를 감추었다. ‘나 없어도 잘 살아갈 수 있지?’ 하고 타지에 자식들을 데려다준 느낌이었다. 그러기에 자식들이 너무나도 어렸지만 말이다. 이후 찰리는 형제들로 추정되는 고양이 몇 마리를 화단에 함께 데려왔다.

콧수염이 멋진 찰리
식탐대장 찰리
부모 고양이라고 추정되는 고양이. 찰리는 왼쪽에 너무나 귀엽게 앉아있다.




찰리는 대장 같은 고양이었다. 형제들 중에서 늘 대장 노릇을 했다. 밥도 늘 제일 먼저 먹었고 밥그릇을 아주 야무지게 챙길 줄 아는 고양이었다. 누군가 자기 밥을 뺏어 먹으려 하면 귀여운 앞발로 밥그릇을 꼭 붙드는 것이 심쿵 포인트였지.

앞발 심쿵, 빼꼼히 보이는 고양이는 찰리가 데려온 (아마도) 형제 고양이




찰리는 호기심도 많았다. 다른 동네 고양이들에 비해 겁이 없는 편이었다. 내가 밥을 줄 때 다른 고양이들은 일정 거리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는데 찰리는 꽤나 가깝게 나에게 다가왔다. 찰리가 동네에 오래 있었다면 아마 처음으로 친해진 고양이가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찰리는 코가 벗겨져 있었다. 랜선으로 보던 고양이들은 핑크빛 코를 가지고 있었는데 찰리는 껍질 벗겨지듯 벗겨져 있어서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찰리는 이내 떠났다. 처음 나타나고 한 달쯤 지났을까? 갑자기 떠나버렸다. 당연히 이유는 알 수 없었고, 동네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한 달이었지만 정이 들었는데, 끝내 나타나지 않아 많이 서운했다. 누군가에게 입양되어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마리

마리는 (아마도) 찰리의 형제로 추측된다. 마리는 코 옆의 점이 마릴린 먼로를 닮아서 '마리'라고 이름을 붙여주었다. 비슷한 체구와 무늬로 봐서는 아마도 형제가 맞는 것 같다. 찰리가 나타나고 일주일쯤 후 마리도 함께 나타났다.

너무 귀여운 마리


마리는 겁이 많다. 씩씩하고 호기심 많은 찰리와 달리 늘 경계하고 겁을 낸다. 내가 사진을 찍을 때도 카메라를 몇 번이나 쳐다본다. 카메라를 쥔 손을 조금만 움직여도 움찔거리며 달아났다. 이후로 나는 마리가 밥을 먹을 땐 가까이 가지 않고 멀찍이서 영상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마리는 서열에서도 찰리보다 아래인 것 같았다. 늘 찰리가 먼저 밥을 먹었고 마리는 지켜보기만 했다. 찰리가 다 먹고 나서야 밥을 먹기 시작했다. 결국은 밥그릇을 항상 두 개씩 챙겨 와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했다.

항상 찰리 먼저
찰리 뒤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마리



처음 만난 것이 6월 초여름이었는데, 이제 무더위도 한 풀 꺾인 8월 말이 되었다. 아마 생후 4-5개월 정도 되지 않았을까? 쑥쑥 자란 게 눈으로 느껴져서 조금 신기하고 뿌듯했다. 내 고양이도 아닌데 꼭 내가 키워낸 것만 같은 뿌듯함이었다. 


그리고 이 무렵 마리는 어디선가 친구를 한 마리 데려왔는데 (사진 속의 노란 고양이, 노랑이) 마리는 모습을 감출 때까지 노랑이와 함께 붙어 다녔다. 

밥그릇 두 개 뒀는데 왜 하나의 그릇에 나눠먹는건지 참




그리고 이 무렵 마리는 다리를 다쳤다. 저렇게 왼쪽 발을 제대로 펴지 못하고 절뚝거렸고, 왼쪽 발에 힘을 제대로 싣을 수 없어 담장을 제대로 점프하지 못했다. 사실 다리를 다쳤지만 밥도 잘 먹고 표정도 밝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길냥이가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면 그 고양이에겐 죽음뿐이다. 나는 걱정이 되어 네이버 고양이 카페에 가입해 마리의 사진과 동영상을 찍어 올리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 동물병원에 데려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몇 날 며칠 마리의 다리를 살피며 관찰했는데, 다행히 점점 나아가는 게 눈에 보였다. 아마도 놀다가 다리를 살짝 삐끗하지 않았을까 싶다.





처음 만났던 때가 초여름이었는데, 해가 바뀌고 2월이 되었다. 제법 으른 고양이 느낌이 난다. 이제는 아기 고양이가 아니라 성묘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해가 바뀌고 나는 회사를 다니게 되어 고양이와 만날 시간이 더더욱 줄어들게 되었다. 해가 바뀌고 나서는 고양이를 전혀 챙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본 마리는 잘 먹고 있는 건지 겨울이 되어 털이 찐 건지 나름 때깔 좋은 길냥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것이 마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역시나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마리와 노랑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나보다 밥을 더 잘 챙겨주는 사람이 나타난 걸까?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나? 그랬으면 정말 좋을 텐데.

요건 2월


 매일은 아니지만 1-2주에 한 번은 꼬박꼬박 만났었는데 이때쯤엔 나를 알아봤을까? 다시 보니 앞발을 숨기고 있구나. 고양이가 앞발을 숨기고 있다는 것은 경계하지 않는다는 의미라던데, 당시의 나는 그 사실을 몰랐기에 어른 고양이가 될 때까지 나에게 손길 한번 허락하지 않은 마리에게 내심 서운했다. 하지만 이제 서운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사실 마리는 겁도 많고 경계심도 많은 고양이라 화단을 빨리 떠날 줄 알았다. 하지만 마리는 생각보다 오래 내 주위에 있어 주었다. 그리고 늠름하게 제법 잘 자랐다.




노랑이

마리가 데려온 친구 '노랑이'. 노랑이는 떠오르는 이름이 없어 그냥 노랑이라고 불렀다. 쓰다 보니 이거 무슨 고양이 다단계인가. 친구가 친구를 데려오고 또 그 친구가 다른 친구를 데려온다. 하긴 놀거리 많고 밥 꼬박꼬박 챙겨주는 다단계라면 한 번쯤 친구를 데려가 볼 만하지.


아무튼 노랑이는 마리의 부모님인지 친구인지 알 수는 없지만 마리보다 몸집이 큰 것으로 보아 나이가 더 많은 고양이다.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지만 성묘였고 그럼에도 마리와 참 잘 놀아주었던 고양이었다.


안타깝게도 노랑이는 잘 나온 사진이 없다. 마리와 같이 있을 땐 거의 영상 촬영만 해서 대부분 전부 영상에서 캡처한 사진들이다. 치즈색의 털과 핑크빛 코, 노란색 눈이 정말 예뻤던 고양이다.

이게 제일 잘 나온 사진이야
예뻐!




노랑이 참 무던하고 착한 고양이었다. 날 심하게 경계하지는 않았으나 밥 먹을 때 가까이서 지켜보는 것 정도는 허락해주었고, 밥그릇에 욕심을 부린다거나 식탐을 부리지도 않았다. 밥을 먹을 땐 늘 머리를 맞대고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볕이 잘 드는 날에는 지붕 위에 올라가 마리와 함께 누워있었으며, 사이좋게 그루밍을 해 주기도 했다. 

마리도 노랑이도 둘 다 참 예쁘다

노랑이도 마리와 함께 사라졌다. 둘은 짝꿍처럼 붙어 다녔으니 영역을 옮길 때도 붙어 다녔겠지? 그래도 서로 외롭지 않아 보여서 다행이야.




삼색이

우리 동네의 존예 고양이였다. 얼굴이 정말 작고 눈은 정말 큰데 눈 주위에 짙게 아이라인도 있고 털색도 치즈크림색+회색이다. 하지만 예쁜만큼 성격도 더러운 고양이었다. 한 번은 내가 츄르를 손에 들고 있었는데, 삼색이는 내가 츄르를 들고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츄르를 당장 내려놓으라는 듯 내 손을 쳤고 나는 손에 생채기가 났다. 경계심이 많은 마리는 나를 보고 도망갔지만 삼색이는 나에게 적대심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존예 삼색이

그렇지만 삼색이는 가장 오랫동안 나를 찾아 주었던 고양이 기도하다. 가끔 나를 찾아와서 츄르나 참치캔을 얻어먹고 갔다. 물론 삼색이와 친해지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찰리와 마리의 또 다른 형제

사실 이름을 붙이지 못한 건 이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봤기 때문이다. 찰리와 마리의 형제들 중 한 명인데, 정말 우주 최강 겁쟁이었다. 밥 주려고 밥그릇을 놓아도 움찔, 핸드폰을 꺼낼 때도 움찔. 오만 것에 겁을 내던 슈퍼 겁쟁이는 밥을 먹을 때도 찰리와 마리가 다 먹고 나서야 먹었다. 이 녀석 말고도 다른 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었는데, 그 고양이는 찍지 못했다. 꾸준히 밥 먹으러 와줬으면 좋았겠지만 딱 하루밖에 보지 못해 많이 아쉬운 고양이다.

오른쪽의 고양이 귀, 보이시나요!
딱 봐도 겁쟁이!






약 8개월 동안 길렀던 아기 고양이들은 모두 동네를 떠났다.

내가 밥 주는 걸 소홀히 해서 떠난 건지, 내가 준 밥이 더 이상 맛이 없어서 떠난 건지, 아니면 영역다툼에서 밀려난 건지 이제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나는 이 동네를 떠났고, 더 이상 그 고양이들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찍어 두었던 사진과 동영상을 다시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심장이 몽글몽글해졌다. 그 당시 하루 중 고양이를 만나 밥을 주는 순간이 제일 행복했다. 오죽했으면 요즘은 쓰지도 않는 필름 카메라에 필름을 넣어 고양이들을 찍어 주기도 했다. (필름 느낌의 사진은 실제 필름으로 찍은 것!) 고양이들을 더 이상 못 본다는 사실이 아쉽기도 하지만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추억이 생겼다는 것이 기쁘기도 하다. 잠시였지만 고양이를 기를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내가 만난 첫 고양이와 묘연이 닿지 않았다. 2년이 지난 지금, 마주쳤던 모든 고양이들이 길에서 혹은 누군가에게 입양되어서 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흔히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첫고양이도 그런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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