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진킴 Aug 07. 2017

바다를 건너는 엽서

낡아버리는 엽서와 낡지 않는 마음.

1. 바다를 건너는 엽서들


유럽 여행을 다니며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낸 적이 있다. 기념품을 대신해 예쁜 엽서에 짧은 편지를 담아 보냈었다. 나는 그 나라의 우표나 우체국 도장을 함께 보내고 싶었는데, 우체국에 가니 모두 자동화되어 있더라. 너무 아날로그식으로 생각했나보다. 집에 돌아와 내가 보낸 엽서를 확인해보니 내가 생각하던 도장은 어디가고, 못생긴 바코드만 툭 붙여져 있을 뿐이었다. 
우표와 도장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지만 , 내가 보낸 엽서들은 넓디넓은 바다를 건너 각자의 집으로 잘 도착한 것 같았다. 한국에 도착하기 2주 전에 보냈는데, 다행히 내가 귀국하기 전에 모두 받게되어 조금 덜 민망했다.

엽서를 보낸 후 보낸 사람들에게 엽서가 전해지는 과정은 설렘 그 자체다. 보낼 때는 잘 도착했으면 하고 설레고,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땐 언제쯤 도착할까 싶어 설렌다. 각자 엽서를 받았다며 하나 둘 인증샷을 보내줄 땐 ‘드디어!’라는 느낌이 들며 또 다시 설렌다. 보낸 그 순간부터 모두가 받는 그 순간까지 설렘으로 가득하다. 




내가 이렇게 유럽에서 엽서를 보내듯, 간혹 나에게도 바다를 건너 엽서가 도착할 때가 있다전단지 말고는 올 것이 없는 우리집 우편함에 무언가 들어있어서 확인해보면 그들의 엽서이다얼마나 반갑고설레고기분이 좋은지엽서의 그림은 어떤 것일까우체국 도장이나 우표는 찍혔을까내용은 어떤 게 담겼을까엽서를 확인하는 3분남짓 혹은 그 보다 더 짧은 시간동안 나는 보낸이의 기분을 같이 공유할 수 있다두세번 정도 읽어보고보낸 사람에게 잘 왔다고 엽서가 아주 예쁘다고 메시지를 보낸다그리고 나의 편지박스에 넣는다






2낡아버리는 엽서와 낡지 않는 마음.



간혹 새 편지를 넣으며 지난 엽서들을 다시 보게 되는데그 때의 설렘만큼은 아니지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이 친구의 글씨가 이랬구나이 때 여기서 편지를 보냈구나예쁘다-라고 속으로 말하며 새로운 엽서를 포개어 놓았다닳을까 무서워 밖에 꺼내 놓지 못하고 차곡차곡 쌓아만 두었다엽서가 닳는다고 그 마음까지 닳는 건 아닌데 말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꺼내어 벽에 걸어보았다. 사실 이물질이라도 묻으면 어떡하나, 덜렁대다가 엽서가 찢어지면 어떡하나, 형광등 빛을 오래 봐서 그림이 바래버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태산이지만 그래도 박스에 넣어두는 것보다 세상에 나와있는 것이 좋아보인다. 벽에 걸어두고 오래오래 그 마음을 받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듯, '첫고양이'도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