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여자가 취미로 축구를? 덕후의 관점에서 본 <우아하고 유쾌한 여자축구>

by 민진킴

정신없는 출근길,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유쾌한 여자축구>를 읽다가 킬킬거리기를 몇 번 반복하다보니 누군가를 붙잡고 '여러분, 이 책 너무너무 재밌어요!'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책에 푹 빠지게 되었다.


김혼비 작가는 정말 굉장하다. 남을 즐겁게 만드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다. 책을 읽다가 끅끅댄 것이 한 두번이 아니다. 책을 읽다가 잠깐씩 피식댄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소리내어 웃어본 건 책을 읽으며 처음이었다. 초반에는 왜 진작 읽지 않았을까 아쉽다가도, 책이 끝날 때가 다가오니 아껴서 읽을걸 아쉬운 마음만 한가득이었다.


작가의 찰진 문장이 워낙 재밌기도 했지만, 이 책이 좋았던 또 다른 이유는 나의 호기심과 공감을 적절히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여성이 축구를 한다'는 것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여성이 축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나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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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니까요.


작가가 축구팬이라는 점은 야구팬인 나에게 묘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공감을 넘어선 재미 포인트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를 따라 처음으로 축구장에 갔다가 '직관'의 매력에 사로잡혀 그날로 K리그 팬이 되어 틈만 나면 축구장에 갔다."


그치. 역시 직관이 최고지.

엄마를 따라 처음으로 야구장에 갔다가 '직관'의 매력에 사로잡혀 그날로 야구팬이 되어 틈만 나면 야구장에 가게 되어버린 나를 대입해보면 이건 틀린말이 아니다. 마음속으로 고개를 수십번 끄덕이다가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때문에 고갯짓이 멈추었다.


"직관은 확실히 또 다른 세계였다. 내 오감으로 직접 겪는 축구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속 깊숙이 새겨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느 날 불현듯 몸속 깊이 들어와 어딘가에 흐르고 있을 이 축구의 리듬을 내 몸으로 직접 타고 싶다는 충동이 강하게 일었다. 나의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하고 있는 것들을 나도 해 보고 싶다! 그때부터였다.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여자 축구팀 정보를 찾기 시작한 건. 체육 소녀가 열혈 축구 팬이 되었을 때 넘어갈 다음 코스로 여자 축구 팀 선수만 한 것도 없지 않은가."


오, 놀라워라. 어떻게 그럴수가 있지?


야구를 좋아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단 한번도 직접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밀어치는 것과 당겨치는 것이 뭔지, 구종별 그립과 회전수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 찾아본 적은 있지만 내가 직접 쳐보거나 던져본적은 없다는 뜻이다. 야구장가서 열심히 응원하고, 중계 챙겨보고, 올해는 잘해주길-하고 바라는 것이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작가는 달랐다. 피치에서 직접 뛰는 것을 선택했다. 축구를 좋아한다더니 (아마추어지만) 축구 선수가 되어버렸잖아. 와, 진짜 멋있어.


그런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나라서, 마냥 신기해보였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이처럼 다를 수가 있다. 놀랍고 또 놀라웠다. 도대체 축구를 얼마나 좋아해야 직접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걸까? 좋아하는 깊이가 달라서 그런걸까? '그냥 좋아하는 마음'하나로 시작한 축구를 저렇게까지 필사적으로 하게 된다니.





꽤나 자주 듣는 말, "그렇게까지 해야해?"


작가가 더운 여름날 땀을 뻘뻘 흘리며 축구를 한다는 것이 유별나게 느껴져서, '취미를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가..


어?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인데?


그렇다.


'그렇게까지 해야해?'라는 말은 나 또한 심심찮게 듣고있었다. 야구 개막전을 보기 위해 연차까지 써가며 내려가겠다는 내 모습을 보며, 나의 주변인들은 "그렇게까지 해야해?"라고 물었다.



"그렇게까지 해야해?"

"엥? 당연하지."

"왜?"

"아니, 보고싶으니까!"



'좋아하면 = 직접보러간다.'이 간단한 공식을 그들은 왜 이해하지 못하는걸까?

그 순간 피치에서 뛰고 있는 김혼비 작가가 훅 떠올랐다. 내 머릿속에 '좋아하면 = 직접보러간다'라는 공식이 있듯, 작가의 머릿속엔 '좋아하면 = 직접한다.' 라는 공식이 성립했던 것이다. 특히나 체육을 좋아했던 체육소녀이니 만큼, 직접 뛰는것만큼 완벽한 '덕질'이 어딨겠나. 이제야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축구를 좋아해서 직관하러 유럽까지 날아가는 사람도 있을테고, 축구를 좋아해서 하이라이트 영상을 수십번 보는 사람도 있을거고, 축구를 좋아해서 직접 뛰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테다. 직접 뛰는 사람이 직관을 다니는 사람보다 축구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으며, 직관을 많이 보러 다닌다고 중계만 챙겨보는 사람들보다 축구를 사랑한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 그 마음들을 가리며 어느쪽의 마음이 더 크다고 절대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니까.



사람들은 내게 그렇게까지 해야하냐고 물었지만, 사실 나에게 이건 '그렇게까지'라는 소리를 들을정도가 아니었다. 정말 건전한 취미생활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데 말이다. 유명한 말도 있지 않은가.


'어덕행덕'


어차피 덕질할 거 행복하게 덕질하자. 작가는 피치에서, 그리고 나는 직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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