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달리기라는 기도를 한다

by 손민지

1월 1일에는 해돋이를 보는 대신 일몰을 보며 달렸다. 새해마다 조용히 치르는 나만의 이 의식은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했다. 새해의 달리기는 해맞이와 별 다를 것 없다. 심박수가 빠르고 땀을 흠뻑 흘리고 있다는 것만 빼면 나도 똑같이 기도를 하고 있다. 평소에 하던 달리기에 비해 특별한 이유는 부디 올해도 잘 살아내기를 온몸으로 기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평범한 말에도 마음이 동하는 걸 보면 올해 또 한 살 먹긴 먹나 보다. 그래서 1월 1일의 대가로 내 땀을 바친다. 이 정도 정성은 들여야 내 기도도 이뤄지지 않을까.


1월 1일의 달리기는 몇 년 전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개운법'을 보고서 시작했다. 말하자면 운세를 트이게 하는 법인데 운세 마니아로서 솔깃했다. 개운법은 청소나 운동, 공부 등으로 생활을 깔끔하고 단정하게 유지하는 게 핵심이었다. 역시 성공에는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 만한 것도 없지. 이렇게만 하면 저절로 운이 좋아진다는 데에 왠지 수긍이 갔다. 평소에 하던 달리기가 개운법의 일종이었다는 걸 알게 되자 나는 달리기라는 의식을 더욱더 경건하게 행했다.


하지만 임상 시험 결과는 처참했다. 지난해 갑작스레 신체와 정신이 무너졌고 한동안 삶이 멈췄다. 개운법을 5년 넘게 해 왔는데 운이 나한테 이럴 수 있나... 개운이고 운동이고 다 소용없었다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아픈 신체와 정신을 추스르기 위해서 적당한 신체 활동은 필수였다. 다행히 몸을 일으키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뛰어난 러너는 아니었지만 내 몸은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가 되어 있었고, 가장 나쁜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간의 수련의 진가는 드러났다. 언젠가 급할 때를 대비해 모아둔 종잣돈처럼 아프고 나서야 내 몸의 근육들은 비로소 아주 요긴하게 쓰였다.


동네 산책 코스를 천천히 걸으며 회복하는 감각도 좋았지만, 컨디션이 괜찮다 싶은 날이면 달릴 궁리부터 했다. 더 이상 '잘' 달리는 일에 관심이 없고, 달리기가 내 몸과 정신의 건강을 지켜줄 것이라는 맹목적 믿음도 사라졌지만 기어코 달리고 싶었던 건 왜일까. 달리기 한 번에 며칠을 골골댔던 어느 날 어렴풋이 떠오른 생각은 달릴 때만큼은 최선의 내가 된다는 것이었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최선'을 검색해 보면 1. 가장 좋고 훌륭함. 또는 그런 일. 2. 온 정성과 힘. 이렇게 두 가지 의미가 나온다. 달리는 모습이 내가 가진 모습 중 최고의 모습이라는 1번의 의미는 지금껏 내 달리기의 원동력이었지만, 건강이 한풀 꺾이고 하는 달리기는 좀 다르다. 이제는 '온 정성과 힘'을 쏟는다는 두 번째 최선의 의미를 더 오래 곱씹는다.


지난해 가을, 지친 심신을 달래러 갔던 템플 스테이에서 나는 온통 정성을 쏟는 사람들 사이에 둘러 쌓였다. 법당에서는 물론이고, 모든 문을 드나들 때마다 사람들은 몇 번이고 합장하고 허리를 숙였다. 법당 밖까지 방석을 깔고 늘어선 사람들의 모습은 좀 충격적이었다. 무릎을 꿇고 몸과 머리를 연신 낮추며 간절한 표정을 한 사람들의 모습은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자기 자신을 포장하는 인스타그램 속 이미지들, 너무 잘난 외모와 성취들, 경쟁하듯 올리는 소비 경험에 관한 과시처럼 나 잘났다고 떠드는 세상에 자기 자신을 낮추는 몸짓은 귀하고도 편안해 보였다. 마침내 저녁 예불에 참석하고 나서야 기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스님의 불경 소리와 목탁 소리가 이어지는 한 시간은 초심자에게는 괴로울 만큼 긴 시간이었지만, 괴로움 속에서도 눈을 질끈 감고 납작 엎드리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몰려왔다. 이마가 바닥에 반복해서 닿는 동안, 높은 곳을 향하고 싶어 괴롭던 내 마음도 함께 낮아졌다.


에리히 프롬은 자발적인 활동만이 자아를 자유롭게 한다고 했다. 기도야말로 가장 자발적이며, 자발적인 활동 중에 가장 간단하다.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잘 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간절해지는 일. 불확실한 삶 속에서 자유를 느끼는 가장 좋은 태도는 정성을 쏟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게 달리기는 기도의 한 형태쯤 된다. 온 집중을 다해 반복하는 모습은 기도와 닮아있다.


달리는 시간만큼은 나는 최선의 태도를 갖게 된다. 자발적으로 달릴 때 나는 나 같다고 느끼니까, 최선의 힘을 쏟으며 자유로워지는 셈이다. 그날의 기도로 배운 것은 훌륭함이 아닌,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얻는 안도와 자유다. 1월 1일의 달리기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는 올 한 해를 보내고 나서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온 정성과 힘을 쏟고 난 후에 어김없이 찾아오는 안도 정도면 아주 괜찮은 수확 아닌가. 그런 만족감으로 올해를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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