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어떻게 여자들을 제자리에 묶어두는가
<여자를 위한 도시는 없다>의 저자 레슬리 컨은 페미니스트 지리학이라는 분야를 처음 발견했을 때 머릿속에 딸깍 하고 불이 켜진 것만 같았다고 했다. 나는 책에서 다룬 다양한 논의들 덕에 무심코 지나친 공간과 행동 이면의 권력관계가 보다 선명히 보이는 경험을 한다.
도시의 주요 결정권자들은 대부분 남자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도시는 남성의 경험을 표준으로 삼음으로써, 여자들이 도시에서 어떤 장애물을 만나고 어떤 일상 경험을 하는지를 거의 고려하지 않음으로써 남성의 전통적인 성 역할을 뒷받침하고 돕게끔 설계되어 왔다.'라고 말한다. 유모차를 끄는 엄마들은 도시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대중교통은 무급 노동과 유급 노동으로 인해 복잡한 동선에 따라 이동하는 여성들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지 않았다. 심지어 제설 정책에서도 도시가 어떤 활동을 높이 평가하는지 드러난다. 대부분의 도시에서는 큰 도로를 먼저 치우지만 스톡홀름의 성평등적 제설 정책은 여자, 어린이, 노인이 이용할 가능성이 높은 인도, 버스 전용 도로, 어린이집 주변을 우선으로 청소하도록 한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도시 공간에서 겪은 여러 일들이 떠올랐고, 나와 함께해줬던 여러 여자들을 생각했다. 케일린 셰이퍼는 <집에 도착하면 문자 해>라는 문장이 '우리가 서로에 대한 연대를 보여 주는 방식이자 밤길을 혼자 걷는 여자라면 누구나 마주칠 수 있는 모든 위험과 불편을 인정하는 방식'이라고 했다. 나와 내 친구들 또한 헤어진 후에는 잘 도착했냐는 카톡을 남기며 당연하게 서로의 안전을 확인한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어릴 적에는 혼자서 못 갔던 오락실을 친구와 처음 가봤고, 더 커서는 캠퍼스에서의 스토킹이나 위협적인 언행 등에 맞서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녔다. 바에서 서로의 잔을 지켜주거나 클럽에서 흩어지지 않는 것도 여자 친구들에겐 너무나 당연했다. 해외 여행지에서는 더 했다. 원치 않는 눈길이나 캣콜링은 기본적인 생활까지 제약했다. 그렇게 위축될 때마다 내 앞에 나타나준 낯선 여자들도 있다. 우연히 만난 언니는 나를 이끌고 런던의 밤거리와 골목골목을 모험하듯 돌아다녔고, 지하철이 끊겨 거의 울기 직전에 택시를 함께 타자고 제안해준 현지인 여성 덕분에 캣콜링이 난무하던 도시 외곽의 호텔 바로 앞까지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었다. 레슬리 컨이 지적하듯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여자들의 우정이 못되고 시기하고 늘 싸우기 일보 직전'이지만, 현실에서 여자들은 날카로운 직감으로 서로를 돕는다. 우리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몸을 가졌기에 서로에게 느끼는 책임감 같은 것이었을까. 저자는 '친구들은 내 안전망이자 도시 생존 도구였다'고 했다. 친구들의 우정뿐만 아니라 모르는 여자들의 우정도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혼자일 때는 어떨까. 백화점과 카페는 여자들에게 가장 좋은 공간일 수밖에 없다. 여자들이 언제든 안심하고 갈 수 있는 화장실은 백화점뿐이다. 또한 '여성이 공공장소에 혼자 있는 것에 오랫동안 제재가 가해져 왔음을 고려할 때 커피숍은 여자들이 상대적으로 안전하게 군중 속에 익명으로 있기, 사람 구경하기, 공간 차지하기,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홀로 생각에 잠기기와 같은, 도시 생활의 정신적 즐거움'이 가능한 곳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을 벗어나면 자신의 몸과 행동을 향한, 원치 않은 관심을 피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자기 검열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가'는 성공적인 도시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위험하든 위험하지 않든 공포에는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공포는 경제적 관점에서 물질적인 결과를 낳는다. 보수가 좋아도 야간 근무나 위험한 지역의 직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고, 세가 저렴해도 위험한 지역이라면 포기해야 한다. 얼마전 내 동생은 가격도 싸고 마음에도 쏙 드는 작업실을 발견했지만 주변 골목의 치안 문제, 낡은 상가, 공용 화장실의 문제로 인해 그 작업실을 포기해야만 했다. 레슬리 컨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자들의 피부 바로 밑에 보관된' 나의 흔한 경험들 또한 이런 것이다. 택시에서 불쾌한 말을 듣고 중간에 내려야 했던 일, 그러면서도 공포스러워 친절을 잃지 않았던 일, 심야버스에서 수상한 눈빛을 감지하고 몇 정거장 전에 급히 내려 다시 택시를 탔던 일, 그에 따른 물리적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더 큰 일을 당하지 않은 것은 그저 개인의 운에 맡겨야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말한 공포의 비용이다. 공포는 여자들을 제자리에 묶어두며, 공포를 기반으로 한 선택 때문에 여자들의 생산성은 손실된다.
그리고 '우리를 남성 보호자에게 의존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은, 여자들이 집이라는 사적 공간에 묶여 있고 핵가족이라는 제도 안에서 가사 노동을 책임지는 이성애 가부장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지탱한다.' (p.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