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참을 수 없는 애매함에 관하여
다큐멘터리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사육곰 생츄어리, 곰을 돌보는 90년대생 여자 넷, 그리고 강원도 화천. 이렇게 이질적인 단어들이 얽힌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영화는 사육곰 보다는 곰 돌봄이 자신의 삶에서 어떤 효용이 있는지 질문하는 여성 청년들의 흔들림을 담는다. 그들은 자신이 몸담은 비영리단체가 도대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지고, 화천에서의 삶이 괜찮은 건지 질문한다. 이런 질문들은 단숨에 내 삶으로 침투한다.
이 애매한 형태의 삶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 것인가. 머니잡과 글쓰기 정체성을 구분한 채로, 집근처 길고양이 돌보는 일을 내가 꼭 해야 할 일로 여기는 모호한 일상. 부산에서의 삶을 청산하고 서울로 이주하겠다는 마음과 서울로 대학원을 진학하겠다는 계획도 있지만 그런 야망들은 늘 ‘언젠가는’ 이라는 미래의 가능성으로만 남겨두고 번번이 유예해 왔다. 자발적이기도 비자발적이기도 한 유예에는 사회경제적 조건부터 돌봄의 기쁨까지 여러 층위가 얽혀있다. 그러므로 내가 염두에 둔 ‘언젠가는’에는 이런 가정들이 있다. 내가 돌보는 고양이들이 다 죽게 된다면, 언젠가 요다가 떠난다면…. 그동안 아픈 고양이들을 떠나보낼 때마다 이제는 마음 편히 집을 뜰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마음 깊숙한 곳에서 스멀스멀 올라오곤 했다.
직업 활동가도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고양이 돌봄이 이렇게 나를 발목 잡아도 되는 것일까. 고양이를 돌보는 일이 어쩌면 내 경력을 방치하는 일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경제적인 이유를 현실적인 문제라고 부르지만 어떤 이들에게 돌봄의 문제는 ‘더 현실적’이다. 돌봄과 개인의 성취는 왜 이리도 동떨어져 있어야 하는 것일까.
영화 속 민재는 돌봄이 어떤 경력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화천에서의 삶에 확신이 없지만 책을 쓸 때까지만 생츄어리에서 일하겠다고 결정을 번복하기도 한다. 지역에서의 고립감과 돌봄 노동의 특수성, 경력에 대한 불안은 계속해서 계획을 수정하게 만든다.
고된 노동과 불확실성을 기꺼이 감당하면서도 생츄어리에 남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왜 어떤 상황과 조건은 우리를 의심하게 만드는 것일까. 개인의 선택에서 돌봄은 왜 그리도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될까.
돌보는 사람에게도 돌봄이 필요하고 생츄어리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활동가들의 삶을 응원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경로 바깥의 삶은 더 많이 발화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