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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Aug 13. 2021

닳다

짧은 생각 #13








닳는 것은 사라지는 것인가?

닳아서 크기가 줄거나 액체가 줄어드는 것이니 사라지는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게 닳는 것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닳고 닳았다'는 말은 세상일에 시달려 약아빠졌다는 의미로 쓰인다.


그럼 무엇이 닳은 걸까?

사람의 정서가 닳아 줄어들거나 사라졌다는 얘기다.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처럼 인간의 몸과 마음도 사용된다.

매일의 사용으로 인체도 조금씩 닳아 사라지고, 마음도 닳아 작은 귀퉁이에서부터 닳아가고 있다. 

의식하지 않거나 못할 뿐.

영원한 건 없으니.


사람은 무엇으로 닳을까?

사랑과 미움, 욕망과 체념, 웃음과 눈물, 기쁨과 환희, 분노와 공포, 질투와 시기 우리가 느끼는 감정들에 의해 서서히 닳아가는 것이리라. 감정이 닳고 닳으면 약아져서, 사랑도 무뎌지고, 미움도 길게 가지 않으며 욕망도 강렬함이 줄어들고, 체념은 빠르고, 웃음이 활기차지 않으며 눈물도 메마르고, 기쁨과 환희가 눈에 띄지 않고, 분노와 공포, 질투와 시기도 그 정도가 무뎌질 것이다.


닳는 것이 사라지는 것이라면 인간의 감정도 서서히 닳아 사라져 마지막에 남는 것은 이 모든 것이 혼합된 작은 응어리만 남는 것은 아닌지.

매일 사용되어 닳는 것인지, 사용하지 않아 증발되어 줄어드는 것인지. 

후자에 무게를 둔다.


사용하지 않아 고이지 않는 감정의 샘물을 증발되어 사라지는 것을 막으려면 매일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매일 사용되어 마르지 않는 샘물을 만들려면 말이다.

닳다. 닳고 닳다. 적응되다

닳다. 닳고 닳다. 풍부해지다.

닳고 닳아서 풍부해지는 감정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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