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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Aug 13. 2021

지나 가자!

짧은 생각  #10




지나가다

동사 

시간이 흘러가서 그 시기에서 벗어나다.

일, 위험, 행사 따위가 끝나다.

말 따위를 별다른 의미 없이 하다. 

    

'지나가자' 내겐 가슴 설레는 말이다.

단발머리 중학생 시절, 좋아했던 선생님이 있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복도에 모여 앉아 공기놀이를 했다.

그날도 우리는 교복 치마를 보자기처럼 접어 모으고 앉아 공깃돌이 많아 자리를 많이 차지했다. 

깔깔거리면서 공깃돌을 주워 모으고 있을 때, 우리 뒤에 그 선생님이 가만히 서 계신 걸 발견했다. 

그때 들었던 말이 “지나가자!” 였다. 부드럽고, 약간은 미안해하는 목소리였다.

아이들이 가슴을 부여잡고 푹푹 쓰러졌다. 그럴 것이 나무 막대를 휘젓고 다니며 “야, 야, 치워라!” 거나 “이리 가져와” 압수당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마다 선생님이 모두 나가신 뒤에 복도에 자리를 잡는다. 

그날은 그 선생님이 좀 늦었던 거다.

별 것 아닌 그 말을 다른 곳에서 들을 때마다 한동안 그 선생님을 생각하곤 했다.

누군가가 좋으면 그가 하는 말이나 몸짓도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처럼 내겐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말이다.



세월이 흘러 90년대의 비극, 최고의 아픔의 시대를 맞이했다.

공깃돌로 막는 것 같은 그런 장애물과는 다른 장애물이었지만 ‘지나가자!’라는 말은 이런 아픔의 시기에 늘 생각나는 말이었다.

전 국민이 기억하는 아픔의 시대는 가히 IMF 구조조정을 받던 시기였을 것이다. 국가도 부도 날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운 없게도 그때 집을 샀다. 살고 있던 전셋집 빼기도 힘들었고, 새집을 전세 놓기도 어려운, 그야말로 진퇴양난이었다. 전세 살던 집주인은 전세 빼서 나가라고 당당하게 말했고, 아파트 잔금은 대출로 내야 했는데 그때 당시 대출이율이 13%였던 것 같다. 어마어마한 대출이율에 입이 떡 벌어질밖에. 

우여곡절 끝에 새집으로 이사한 그 주에 남편은 직장을 나오게 됐다. 구조조정의 여파였다.

그때 우리가 주고받았던 말이 ‘지나가자!’였다. 잘 지나가자고 서로에게 힘을 주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이 말은 내게 힘을 주는 말이 되었다.

‘지나가자!’

가슴 설레는 말로 기억되었던 말이 힘을 주는 말로도 나만의 사전에 등재된 것이다.

간결하나 힘 있는 말

지.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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