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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놀 Aug 13. 2021

우리 집은 어디에 세울까?

짧은 생각  #9




인디언들의 집 티피는 땅바닥에 나무 말뚝을 박아 고정하고 물소 가죽을 덮어 만든다. 

원추형의 집이 완성되면 그곳에 들어가 잠을 자고 밥을 지어먹는다. 

티피의 뼈대 사이 작은 틈으로 햇빛이 비치면 아마도 아침이 온 것이리라.

밤이 되면 별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인디언들은 그렇게 집을 짓는다는데, 우리 집은 어디에 세울까?

세운다는 의미는 요즘의 집과는 맞지 않는다.

땅을 파야 집 짓기의 시작이다. 땅도 그냥 파는 게 아니다. 

지하 10층 정도는 돼야 주차시설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나뭇잎 모양의 천막으로는 절대로 만족할 수 없다.

집값 폭등에 대한 뉴스를 지겹도록 본 탓에 집은 그저 숫자에 불과하게 느껴진다.

집을 짓다와 세우다는 무엇이 다를까? 짓다는 만든다, 세우다는 곧게 펴거나 위로 향하게 하다는 의미이다.

나는 세우다와 짓다 중 선택한다면 '세우다'를 선택하겠다.  

집은 세우고 싶다. 곧고, 바르게.

잘 다져진 평평한 땅바닥에 말뚝을 박고, 기둥을 세우고 천정을 이어 집을 세우고 싶다.

마당에는 햇볕이 잘 들어 나무들을 쑥쑥 자라게 하고, 툇마루를 만들어 방마다 건너 다닐 수 있게 할 것이다. 방마다 이름도 붙여주고, 이방 저 방 돌아다니며 방에 어울리는 일을 하고 싶다. 때로는 친척들이 몰려와 이방 저 방에 모여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방을 만들고 싶다. 


  

백석의 시 ‘여우난곩족’에 그런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명절 전날 가족들이 모이는 장면에서 시작한 시는 명절날 아침 모습까지 그리고 있다.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도 나고 (...)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밭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쥐잡이를 하고, 숨굴막질을 하고/ 꼬리잡이하고 가마타고 시집가는 놀음/ 이렇게 밤이 어둡도록 북적하니 논다. 엄매는 엄매들끼리 아르골에서들 웃고 이야기하고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웃간 한 방을 잡고 조아질하고 이렇게 화디의 사기방등에 심지를 몇 번이나 돋우고 홍게닭이 몇 번이나 울어서 졸음이 오면 아릇목싸움을 하며 히드득 잠이 든다 / 샛문 틈으로 장지문 틈으로 무이징게국을 끓이는 맛있는 내음새가 올라오도록 잔다"    

  

어린 시절 경험이 떠올라 훈훈했다. 방마다 사촌 간인 아이들이 모여 일렬로 잠이 들고, 새벽에 일렬로 일어나 세수했더랬다. 그 참에도 차례만 끝나면 뭐하고 놀지 궁리하고 마루에 일렬로 늘어선 전이나 떡을 하나씩 집어 먹으며 다니곤 했었다.

그런 집을 세우고 싶다.

집터를 단단하게 다지고 잘 생긴 주춧돌을 구해서 집을 세우고 싶다.  

곧고 바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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