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침놀 Aug 29. 2021

세상 끝, 어디라도

<눈의 여왕> 겔다의 시간

      

1. 거울과 그 조각, 조각들                    

<눈의 여왕>은 악마 트롤이 등장하면서 시작된다.

트롤은 평화로운 세상에 쓸모없는 것만 비치고, 더 추해 보이는 거울을 만들었다.

불행히도 악마는 거울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땅에 떨어뜨려 산산조각 내버리고 만다.

그래서 세상은 쓸모없는 것들이 좋아 보이며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추해 보이게 되었다.

트롤이 산산조각 낸 거울은 먼지처럼 세상 여기저기에 흩어졌다. 누구의 눈이건 심장이건 들어갈 수 있다. 

먼지처럼 가볍고 작지만 생각과 감정을 지배한다. 두 가지의 변화는 그 사람 자체를 바꿔놓는다.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이 된다.     


왜 눈과 심장이었을까?

눈은 세상을 보는 창이다. 그 창에 유리 조각이 박힌다면, 제대로 볼 수 없게 된다. 시각이 변화를 일으키고, 세상을 보는 프레임 자체가 변하기도 한다. 심장은 어떤가? 심장이 거울에 찔리면 감정이 균형을 잃거나 무디어지거나 왜곡되거나 심하면 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는 가끔 깨진 거울 조각이 눈에 박히거나 심장에 박힌 사람을 만나게 된다. 

진실을 보지 못하고,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부정적이고, 이기적이며, 타인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감정만이 소중한 그런 사람. 때론 감정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

그들을 만나면 상처 받고 그래서 만나지 않으려고 숨어 다니거나 제풀에 지치기도 한다. 

때론 자기 자신도 거울 조각에 찔리기도 한다. 자기 눈에 박힌 거울 조각을 빼내기 어렵지만, 남의 눈에 박혀있는 거울 조각은 더욱 빼내기 어렵다. 

그런데 어른들은 아마도 포기할 이 일을 겔다는 도전한다. 그 어려운 일에.      

겔다, 모험을 떠난다.    

      

2. 카이와 겔다의 시간- 여름과 가을에서 겨울로                         

카이와 겔다는 이웃이다.

카이와 겔다의 집을 이어주는 곳에 장미정원이 있다.

그림책을 함께 보던 어느 날, 카이의 눈과 심장에 거울 조각이 박히고 만다.

카이는 변했다. 유리 파편 때문이다. 겔다는 카이가 변한 이유를 모른다. 카이도 모르긴 마찬가지다.


겨울이 왔다. 

썰매를 타러 간 카이는 하얀 썰매에 자신의 썰매를 묶어 따라가게 되고 여기서 눈의 여왕과 두 번째 마주친다. 처음 만났을 때는 유리창에 비친 눈의 여왕이 두려웠다.

그러나 지금 카이의 눈에 비친 눈의 여왕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눈의 여왕에게 묘한 끌림을 느꼈던 걸까. 카이는 차가운 눈의 여왕의 품에 안긴다.

눈의 여왕이 키스했고, 카이는 모든 기억을 잊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엔 끌림이 있다.

아르테미스의 미모를 모든 신들이 갈망했듯.

아름다운 것엔 일종의 자석이 있는 모양이다.

그 자석은 보편적인 것을 거스르는 강한 끌림을 만든다.

일종의 도취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카이도 그랬을 거다. 눈과 심장이 거울 조각에 찔린 카이의 눈에 비친 눈의 여왕은 세상 끝까지 가도 좋을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겔다는 깨끗이 잊고 말이다.

그렇게 아무런 의심도 없이 따라갈 수 있을 만큼 눈의 여왕의 아름다움은 카이에게 강렬했던 것이리라.


강렬한 아름다움은 치명적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끌림은 보이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카이가 눈의 여왕의 아름다움에 강하게 끌린 것은 그의 눈에 박힌 유리조각 때문에 눈의 여왕이 가진 위험성은 보지 못한다.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두려움보다는 아름다움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더 작용했을 것이다.

아름다운 것의 비밀이 궁금해지고 매력적인 아름다움에는 중독된다. 그 중독성은 욕망에서 오는 것이고 불가항력적인 매력 앞에 카이는 굴복한 것이리라. 아름다움에 사로잡힌 카이는 자신의 파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눈의 여왕이 가진 아름다움은 어쩌면 비현실적 이미지로 인한 끌림이라 할 것이다.

아름다움에 이끌려 세상 끝까지 가도 좋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눈의 여왕은 우리에게도 가끔 썰매를 타고 온다.

모두가 알지만 내 손엔 닿지 않는 ‘욕망’을 싣고 말이다. 욕망은 중독성이 있어서 강렬한 끌림이 있다. 자기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눈의 여왕이 탄 썰매에 타고 키스를 받으면, 욕망은 세상 끝까지 가도 좋을 아름다움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욕망은 순간의 끌림이 워낙 강렬하여 망설임은 짧고 후회는 길다. 돌아볼 일이다. 내 곁에 눈의 여왕이 있지는 않은지.           


3. 겔다의 시간-                    

이런 사실도 모르고 겔다는 카이를 잊지 못한다.

사라진 카이를 찾던 겔다는 봄이 되자 카이를 찾으러 간다. 

그녀는 눈의 여왕에 이끌려 세상 끝 라플란트로 간 카이를 찾아 용감하게 떠난다.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어디서든, 언제든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달려와 줄 누군가가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히어로들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구한다. 지구를 구하기도 한다. 옷만 갈아입으면 특별한 능력을 가진 히어로들도 있지만 평범하고 힘없는 주인공이 세상 끝까지 가서 사랑하는 이를 구할 때 우리는 더 박수를 쳐주지 않았던가. 

어려움에 빠진 카이를 구해낼 사람은 겔다다.

힘없고, 연약한 미성숙한 겔다. 

응원하자!     

겔다의 모험이 시작되는 것이다.


겔다는 카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카이가 살아있다고 생각한다. 겔다의 귀에 동물과 식물들이 속삭인다. ‘카이는 살아있다’고. 겔다는 카이를 찾아야 한다. 살아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찾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겔다는 강에서 배에 올라탔다. 배는 겔다가 타자마자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신비한 정원에 들어선다. 

그곳에서 할머니를 만난다.

할머니는 이상하게도 겔다의 머리를 빗겨주면서 카이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다.

겔다의 소중한 추억 카이를 떠올릴 ‘장미’도 사라지게 만들었다.

할머니는 겔다와 함께 살고 싶었던 거다.

그러나 비뚤어진 애정의 결말, 집착의 결과는 밝지 않다.

그래서 할머니에겐 비극이, 겔다에겐 기회가 찾아왔다.

꽃밭을 구경하던 겔다가 ‘장미’를 떠올렸고, ‘장미’를 떠올리면서 카이에 대한 기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겔다가 장미를 보고 카이를 떠올린 것은 둘 사이에 있었던 추억 때문이다. 추억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다. 그리움이 스며들어있다. 그 기억은 오감을 동원한다.

‘장미’를 보거나 듣거나 향기가 나거나 촉감이 느껴지면 자연스럽게 카이가 생각나는 것이다. 그런 자연스러운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추억하는 것은 연상작용으로 이어진다. 누군가가 가진 반쪽짜리의 추억, 그 반쪽은 사랑일 수도, 연민일 수도 미움일 수도 그리움일 수도 있는 것. 그 추억이 ‘느닷없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겔다가 그랬다. 할머니가 모든 기억을 지웠다 할지라도 민들레 홀씨처럼 날아든 기억의 작은 씨앗 하나가 카이를 떠올리게 한 것이다.     

겔다, 다시 길을 나선다.    

            

4. 겔다의 시간 여름 지나 가을, 다시 겨울                    

할머니의 집을 나온 겔다의 시간은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다시 겨울이 되었다.

까마귀가 말을 걸어오고 공주와 결혼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겔다는 공주와 결혼한 남자가 카이라고 확신하고 성으로 향한다.

겔다는 카이가 결혼했을지도 모를 이 상황에서 망설이지 않는다. 그만큼 카이에 대한 사랑이 깊은 걸까? 어쨌거나 카이라 생각한 왕자는 카이가 아니었다.

이렇게 친구를 찾아 힘든 여정을 가고 있는 겔다에게 왕자와 공주는 도움을 준다.


왜일까?

순수함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킨다. 왕자와 공주도 겔다의 순수함을 알아본 것이다. 

친구가 어디론가 사라졌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찾지 않을 수 없는 그녀의 순수함에 힘을 보태준 것이다. 

겔다가 카이를 무사하게 찾기를 바랐을 것이다.

공주와 왕자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을지 모른다.

“내가 사라지면 네가 나의 겔다이어야 해!”

“너도!”

서로가 서로의 ‘겔다’이기를 바랄 것이다.

생각해보자.

내가 사라지면 세상 끝까지 찾아올 그 누구를.

있어야 한다. 떠오르는 누군가가. 

만약 떠오르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만들어야 할 것이다.

왕자와 공주의 속마음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겔다를 도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겔다의 순수함을 높이 샀기에.     

겔다, 힘을 내서 성을 떠난다.   

       

5. 겔다의 시간 - 겨울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겔다는 산적들을 만난다. 

착한 아이가 세상을 헤쳐나가기는 쉽지 않다.

산적들은 사람 목숨을 파리만도 못하게 생각하니 겔다를 죽이려 들었다.

그러나 산적의 무리 속에서도 순수한 영혼을 가진 이가 있었으니, 바로 산적의 딸이었다.

겔다의 순순한 마음을 알고 겔다를 돕는다. 

산적의 딸과 함께 있던 산비둘기가 카이는 눈의 여왕과 함께 있다고 소식을 전한다.

눈의 여왕은 라플란드에 있고, 카이는 눈의 여왕과 함께 있다.


가자, 겔다!

이제 겔다는 확신 어린 희망을 갖고 카이를 찾으러 떠난다. 

라플란드에 카이가 있고, 눈의 여왕과 함께 있다고 했으니, 그곳에 가면 카이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겔다는 다음날 아침 순록과 함께 길을 나선다.

겔다의 이 적극적인 행동의 힘은 어디서 나올까?

겔다의 목적은 확실하다. 카이에게 가는 것.

그곳이 어디든 상관없다.

카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듣고 싶어 하는 말

‘나는 너를 영원히 사랑해’     


사람들은 왜 영원한 사랑을 갈구하는 것일까?

에로스의 탄생 배경을 살펴보면 아름다운 아프로디테의 생일날, 풍요의 남신 포로스가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 있을 때 빈곤의 여신 페니아에 의해 동침이 이루어지고 이 둘 사이에 에로스가 태어났단다. 그렇다면 에로스의 존재는 어디에 있을까?

풍요와 빈곤, 미와 추, 선과 악, 앎과 무지 그 사이 어디쯤에 있지 않을까?

이 사이를 매워가는 것이 사랑이고, 그렇게 보면 카이와 겔다의 사이 그 어디쯤에 에로스가 있었던 거다. 그래서 그 사이을 매우기 위해 우리들의 겔다는 눈 속을 헤치고 간다.

그곳이 어디든 겔다는 간다.     


6. 겔다와 카이의 시간-소녀와 소년에서 숙녀와 청년으로                    

라플란드에 도착한 겔다는 라프족 여자에게 눈의 여왕의 소식을 듣는다.

어렵고 어렵게 왔건만, 눈의 여왕은 핀마르크에서 지낸다는 소식이었다.

카이는 점점 더 멀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여기서도 겔다는 라프족 여자의 도움을 받는다. 

라프족 여자는 말린 대구 위에 편지를 써준다.


겔다, 핀마르크로 간다.

핀족 여자가 사는 집에 도착한 겔다와 순록은 대구에 써진 편지 보여 준다.

핀족 여자는 순록에게 카이는 눈의 여왕과 있고 유리 조각이 박혀있어 빼내야 한다고 한다.

그 유리 조각을 빼낼 수 있는 사람은 겔다밖에 없으며 겔다의 순수한 마음에서 나오는 힘이 유리조각을 빼낼 수 있다고 말한다.

겔다는 이 사실을 모르고 순록과 눈의 여왕이 사는 성의 정원으로 간다.

겔다는 자신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겔다는 카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카이는 눈의 여왕의 얼음 방에서 자유를 잃었다. 

그 자유를 되찾아 줄 사람은 겔다밖에 없다.

겔다는 모른다. 겔다가 흘릴 눈물이 어떤 기적을 만들지.

그녀의 눈물은 카이의 얼었던 심장을 녹여주고 악마의 거울 조각도 녹인다.

그리고 얼음조각들도 이들의 재회를 축하하듯 춤을 추다 ‘영원’이란 글자가 맞춰진다.

겔다의 입맞춤으로 카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손발이 따뜻해졌다.

겔다가 카이의 인생을 바꾸는 순간이다.

겔다와 카이는 눈의 여왕의 성을 떠났고, 모두가 기뻐해 주었다. 

그리고 겔다와 카이의 시간은 소년의 시간에서 청년의 시간으로 흘렀다.     

겔다, 세상 끝까지 가서 카이를 구했다.     

     

7. 겔다와 카이 어린이의 마음을 간직한 어른이 되다     

눈의 여왕의 성에서 카이는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채로 ‘영원’이란 글자를 맞추고 있었다.

영원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영원한 사랑, 영원한 순수, 영원한 신뢰, 영원한….

카이는 몰랐겠지만 그 무엇이라도 좋았을 겔다와 함께 하는 시간이었을 거다.

오직 하나, 오직 한 사람, 겔다가 카이를 구하러 오고 있었으니.    

 

현실로 돌아오면, 친구 구하러 세상 끝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겔다가 구하려는 카이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장미정원에서 놀았고, 책을 읽었던, 한때는 겔다를 위해 눈의 여왕을 난로에 녹여버리리라 장담했던 친구다.

그야말로 진정한.

그런 카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영원’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변해버린 카이를 외면하지 않고 요술쟁이 할머니가 기억을 지워버려도, 왕자와 공주가 돕고, 아무것도 몰랐을 산적의 딸이 돕고, 라프족의 여자와 핀족의 여자가 돕는다.

그러기에 세상은 아직 살만한 거다.     


변해버린 사람을 외면하기보다는 진실한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릴 수 있다.

눈의 여왕은 완벽한 아름다움과 차가움을 지녔다.

겔다는 서툴지만 따뜻함 마음을 지녔고.

긴 여정 끝에 겔다와 카이는 만난다.

그리고 그들은 어른이 되었다.

어린아이의 마음은 그대로 간직한 채.

겔다가 카이를 살린 무기는 바로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고, 그것의 실체는 눈물이다.

자기를 위해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된 것이다. 겔다가 순수했기 때문에 카이를 구할 수 있었다, 얼음을 녹이는 것은 온기와 따뜻한 눈물이다. 누군가를 찾아 지구 끝까지 갈 수 있다면 그는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다.     

겔다, 카이와 영원히.     

작가의 이전글 아름다운 질병, 결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