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시린 봄을 기억하며

<기억의 목소리-사물에 스민 제주 4.3 이야기> 허은실 글/고현주 사진

by 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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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은 어김없이 올해도 봄을 가져왔습니다.

어느새 4월이 된 달력을 보니 봄인가 싶다 가도 들려오는 먹먹한 소식들에 마음이 아린 봄입니다.


봄은 저 멀리 남쪽 푸른 바다 제주에 제일 먼저 도착했을 테지요. 푸름이 넘쳐나는 아름다운 제주의 봄은 아리고 시린 기억을 품고 돋아납니다.


<기억의 목소리-사물에 스민 제주 4.3 이야기>에는 제주의 시린 봄날이 들어있습니다.

4.3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들려주는 유품에 얽힌 사연들과 허은실 시인의 시, 고현주 작가의 사진으로 구성된 이 책은 단순한 한 권의 책이 아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의 기록입니다.


두 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은반지는 딸의 손에 맞춘 듯 꼭 맞았습니다.

17살에 가장이 된 소년은 아버지가 만들어 두신 궤 안쪽에 빼곡히 적힌 형님들의 생일에 제사를 모시며 남은 동생들의 아버지 역할을 했습니다. 아무 이유 없이 총살을 당한 남편을 땅에 묻고 어머니는 한평생 은비녀로 쪽을 지고 밤낮없이 일하며 세 살 배기 자식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렇게 제주 바다에, 들에, 산에, 그리고 또 처음 가본 육지 어딘가 수용소에서 이유도 모른 채 생을 마감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품은 아픔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하고 수십 년을 버티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무심한 세월은 흘렀고 부모를 잃었던 아이들은 이제 주름 진 손,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됐습니다.


제주 4.3 희생자 유가족분들이 내려놓지 못한 채 품고 살아가는 아픔이 얼마나 많을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기에, 그저 할 수 있는 일은 기억하는 일입니다.


가진 것 없어도 욕심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군 땅과 바다에서 땀 흘려 일하고, 노래를 부르며 평화롭게 살아가던 섬마을에 갑자기 불어 닥친 시대의 광풍이 불러온 참혹한 결과를 잊지 않고 기억하는 일, 그리하여 다시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지금 눈부시게 아름다운 제주를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제주 4.3 희생자분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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