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 스토리 한국사> 이기환 글/ 김영사
역사 속 이야기를 쉽게 풀어낸 고고학자 이기환의 <하이, 스토리 한국사>를 읽었습니다. 다양한 인물과 사건, 유물과 유적에 얽힌 이야기들이 담겨있어서 재밌고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그중 2부 인물과 인연에서 <왕조시대 군주들의 재난 대처법-모두 과인의 책임이다!>편이 기억에 많이 남았습니다. 역사 속 기록된 기상이변이나 재난 상황에서 왕들은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책임을 졌을까요?
가뭄과 황충 때문에 백성들이 시름에 잠기자 영조는 자신이 부덕하고 노쇠한 탓이며(당시 75세) 만약 나의 정성이 있었다면 벌레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에 황충이 생긴 건 부족한 자신의 탓이라 말합니다.
효종은 1656년 5월 27일 내린 직언 교서에서 이와 같이 이야기합니다
“내 정치가 보잘것없어 기상이변이 발생했다. 두려움과 걱정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정말 죽고 싶구나. 직언을 구해서 어리석은 자질을 변화시켜 보리라.”p.228
자연재해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신하들에게 직언을 구하는 왕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1690년 가뭄이 극심해지자 숙종 또한 어떤 직언도 죄주지 않겠다며 재변은 모두 자신이 덕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조선의 왕들은 자연재해나 기상이변 같은 천재지변을 모두 자신의 탓이라 여겼습니다.
그렇다면 인재가 명백한 사고에 대해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태종실록_1403년 5월 5일>은 경상도에서 거둔 현물 세금 조운선 34척이 풍랑을 맞아 침몰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태종은 이렇게 말합니다.
“책임은 내게 있다. 5월 5일은 음양으로 볼 때 대흉일이고, 또 강풍이 풀어서 배 운항이 불가능했는데, 배를 출발시켰다. 실로 백성을 사지로 몰고 간 것과 다름없다.” P.230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태종의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오늘은 4.16일 세월호 참사 11주기입니다. TV로 기억식을 시청하다가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에게도 책임을 지는 지도자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이제 그만 이야기하라는 사람들도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세월호를 그렇게 허망하게 떠나보내고도, 우리는 또 다른 참사로 잃지 않아도 됐을, 소중한 이웃들을 잃었습니다.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아픔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유족분들의 아픔을 이해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 아픔을 감히 어떻게 이해를 할까요? 서툰 위로도 전하기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기억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인재로 인한 참사로 더 이상 많은 사람들이 아프거나 죽지 않도록, 그 일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어떠한 처벌도 반성도 없이 편하게 살지 않도록, 함께 기억하고 연대하는 것만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