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머무는 자리에 비로소 내가 머문다.”
[심오재일기 ⑥] 2025.12.8.
집으로 가는 길 2
동네 산책길 어느 자리에, 작년 겨울부터 허물고 다시 짓던 집 한 채가 거의 완성되어 있었다. 그 집은 모르는 새 먼지를 날리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재건축의 시간을 건너왔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곧 새 주인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한동안 집 없이 떠돌던 주인은 다시 돌아와 거실부터 안방까지 방마다 불을 켤 것이다. 히터를 올리고, 레인지를 점화해 무언가 따뜻한 요리를 만들겠지.
어쩌면 거실 벽 높은 곳에 십자가를 걸고, 벽마다 좋아하는 그림을 걸어둘지도 모른다. 바흐나 헨델의 음악, 혹은 아베마리아나 그레고리안 성가가 흐르고, 주인은 고요히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을 것이다. 감은 눈 안에서 길은 더 멀어지고 더 깊어질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 식탁 옆 그릇장 위에 사랑하는 그릇들을 조용히 올려둘지도 모른다. 모란디의 정물처럼, 세월을 건너온 그것들이 잠시 거기에 머물러 은은한 존재감을 드러내리라.
아침에 십자가를 비춘 햇살이 오후엔 그릇들을 비출 때, 주인은 그 곁에 앉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사색에 잠길 것이다. 사색은 찻빛만큼 깊을 것이고, 때로는 이즈음 읽고 있는 책과 함께일 것이다. 그렇게 집은 성소가 되고, 식당이 되며, 카페가 되고, 음악 감상실과 미술관, 그리고 도서관이 될 것이다.
집은 머무름과 경청의 공간이면서, 피어야 할 때 온전히 피어남을 허락하는 자리이다. 그곳에서 식물들은 자기를 꽃피우고, 화가는 그림으로, 시인은 글로써 생을 완성한다.
그 집은 반드시 내 집이 아니어도 된다.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자리라면. 그곳은 도서관일 수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일 수도 있으며, 고요한 겨울숲이나 바다일 수도 있다.
오늘 나는 겨울바다의 철썩이는 파도소리처럼 사람들의 말소리가 끊임없이 울리는 어느 카페에 모란디의 정물처럼 앉아 있다. 집보다 더 역할이 없는 그곳에서, 익명의 섬이 되어 파도 거품처럼 부드러운 카페 라테 한 잔과 겨울볕처럼 따사로운 스폰지 케이크를 야금거리며 망연히 떠 있다.
사실 우리는 정물처럼 존재하면서도 섬처럼 끊임없이 변화한다. 세월의 먼지가 쌓이고, 빛에 색이 바래고, 주름지고 낡아진다. 그러나 누군가 말했듯이 건물은 낡아야 비로소 시가 된다. 사물도, 사람도 마찬가지다.
시가 되기 전에 허물어져버린 건물은 슬프다.
시가 되기 전에 떠나버린 사물도, 사람도 슬프다.
그래서 나는 모란디의 정물처럼 오늘도 조용히 빛을 받아들인다. 말하지 않아도 존재가 드러나는 순간의 온기를 끌어안으며 느리게, 나의 시간 속으로 깊어져간다.
♤ AI 모란디풍 이미지, 「정물」, 2025.
– 고요한 빛 속에서 사물의 영혼이 드러나는 순간의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