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스트 12.3
두절조기
임미옥
빛고을에서 배달 온
두절 조기를 굽는다.
머리 없는 조기들은
자기들이 불에 올려진 걸
알까, 모를까.
아니 그전에
어쩌다 두절이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어차피 죽을 몸,
생각이란 걸 애초에
하기 싫었을까.
아니면 누군가
생각하지 못하도록
머리부터 걷어간 걸까.
그것도 잘 모른다.
혹은 오래된 공포가
스스로의 머리를 집어삼켰는지도
정말 모른다.
모른다, 모른다—
되뇌다 보니
문득 나도 두절인간인가.
한 번만 더 '모른다' 하면
닭이 울 것 같아
밤새 떨리는 머리로
읽고 쓰고 생각한다.
✍️ 시인의 노트 ― 「두절조기」를 쓰며
광주에서 두절조기 한 상자가 도착했다.
머리가 잘려 방향을 잃은 채 엉켜 있는 생선을 마주한 순간, 나는 이 시대의 표정을 떠올렸다.
생각이 잘려나간 얼굴, 판단이 사라진 공동체의 자리가 거기 있었다.
비상계엄 선포를 가십과 왜곡의 틈으로 흘려보내는 언론, 사실보다 흥분을 좇는 여론, 책임을 둘러싼 기묘한 침묵.
누군가는 의도적으로 잘라내고, 누군가는 두려움에 머리를 거두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생각을 멈춘다. 형태는 달라도 귀결은 같다.
머리를 잃은 사회는 쉽게 요리된다.
‘모른다’는 말은 지금의 정국에서 너무도 익숙한 도피처다.
모른다는 말 뒤로 책임과 윤리는 조용히 밀려난다.
그 모른다의 균열이 어둠의 통로가 된다.
두절조기를 굽는 동안 나는 나 자신에게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나 또한 어떤 순간에는 생각을 피하고, 진실을 외면하고, 편안함을 이유로 스스로의 머리를 낮춘 적은 없었는지.
머리를 잃는 일은 순식간이 아니라 조금씩, 조용히 진행된다.
두절조기는 그 단면 하나로 말한다.
생각을 지키지 않으면 누구든 잘려나갈 수 있다고.
머리를 세우는 일, 머리를 사용하는 일—
그것이 지금의 어둠을 건너는 가장 합당한 방식이라는 것을.
♤ 사진, 강상태(피시 큐레이터)의 포스트
– 머리가 사라진 곳에서 시작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