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수선집

by 혜윰의 해밀

[시와 시인의 노트] 2025.10.25.


영혼의 수선집

임미옥

햇빛이 닿지 않는 곳에도

누군가는 초록을 키운다.

사람의 발길이 드물고,

거의가 셔터 내린 스산한 상가

어둠이 들어찬 통로,

옷가게 앞 화분 속

식물 하나가

사람의 빛으로 광합성하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

더 어둑한 안쪽,

두어 겹 먼지 낀 불빛 아래

재봉틀에 얼굴을 묻은 부부가

서로의 침묵을 꿰매는 수선집

닿을 사람만 닿는 그곳에서는

바늘 끝마다 미세한 숨결이 스미고,

낡은 옷들이

조용히 새 숨을 고르고 있었다.


✍️ 시인의 노트 ― 「영혼의 수선집」을 쓰며

햇빛이 들지 않는 자리에서도 살아가는 것들이 있다. 누구의 눈에도 잘 띄지 않지만, 어떤 존재들은 사람의 온기와 기척만으로도 자기 몫의 생을 이어간다. 이 시는 그런 자리에서 시작되었다. 오래된 상가의 어둑한 통로를 지나며 문득 보게 된 작은 화분 하나, 그 초록은 빛이 아니라 사람의 곁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안쪽에는 또 다른 삶이 있었다. 말없이 재봉틀을 움직이며 낡은 옷을 고치는 부부, 그러나 그들이 꿰매고 있는 것은 단순한 옷감이 아니라, 서로의 말해지지 못한 시간과 침묵이었다. 누구나 드나드는 곳은 아니지만, 필요한 사람은 결국 찾아오게 되는 자리. 그곳에서 낡은 것들은 버려지지 않고 다시 숨을 고른다. 어쩌면 삶도 그러한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인지 모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그러나 끊어지지 않게.

♤ 장-프랑수아 밀레, 「바느질하는 여인」, 1854, 오르세미술관.

– 희미한 등불 곁에서 한 여인이 묵묵히 바느질한다. 뒤편엔 잠든 아이의 숨결이 있고, 그녀의 손끝에는 생명의 온기가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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