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신발을 버리며
임미옥
쓸모를 다한 오래된 신발들
발이 편하고 잘 맞아서
몇 번이나 굽을 갈고
밑창까지 덧대어 걸었지만,
이제는 너무 낡아
고쳐 신는 일이 오히려 구차해졌다.
그래서 안다—
더는 이 길을 함께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아직은 어떤 신발이 내 걸음이 될지 모르겠다.
어쩌면 한동안은 맨발이 내 신발이 되겠지.
허전하고 쓰라린 시간이
내 발바닥을 스쳐 지나가겠지.
그러나 그 고통이야말로
새살이 돋는 자리이니
나는 그 시간을 견딜 것이다.
머지않아, 내 발이 먼저 알아볼
한 켤레를 만나리라.
그 신발은
내 발 모양에 더 잘 맞고,
내 걸음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더 단정히 빛내주는 것이면 좋겠다.
그리고...
정갈한 품위 한 자락 얹어주는 신발이면
그것으로 족하리라.
✍️ 시인의 노트 — 「낡은 신발을 버리며」를 쓰며
오래 신던 신발들을 다시 고쳐 신어보려고 모아두었다가 결국 버리기로 했다.
굽은 이미 모양을 잃었고, 가죽은 제 감촉을 잊었다. 고쳐 쓰려면 비용도 마음도 너무 많이 들 일. 그럴 바에는 새 신발을 사서 신는 편이 낫다.
관계도, 오래 맡아온 역할도, 오래된 마음의 패턴도 마찬가지다.
신발을 버리며 깨닫는다. 낡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 발에 맞지 않기 때문에 내려놓는 것이다.
관계도, 역할도, 마음의 습관도 한때는 나를 보호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가 아니다.
버린다는 말이 잔인해 보여도, 실은 새로운 걸음을 허락하는 가장 부드러운 방식이다.
낡은 것은 미련이 아니라, 놓아줄 때 비로소 나를 지킨다는 걸 이제야 안다.
♤ 반 고흐, 「구두 세 켤레 (Three Pairs of Shoes)」, 1886년경
– 먼 길을 걸어온 시간이 가죽의 주름으로 접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