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크리스마스 트리!

by 혜윰의 해밀

"아이들이 트리를 올려다보던 그 겨울은, 시간이 흘러도 빛을 잃지 않는 늘푸른 크리스마스였다."


[심오재일기 ⑧] 2022.12.

오, 크리스마스 트리!


집안에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했다. 몇십 년 만인 것 같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매해 12월이면 트리를 장식하는 일이 주요 행사였고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그를 위해 눈에 띄는 장식품을 하나둘 사 모으는 일도 작은 기쁨이었다.


그러다 언젠가 이사를 하면서 그 트리를 폐기했다. 아이들이 금세 자라 120cm 트리가 너무 작고 볼품없어졌기 때문이다. 비지스(Bee Gees)의 노래 ‘First of May’ 가사처럼 시간이 흘렀고, 아이들은 키가 컸고, 크리스마스트리는 작아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트리는 오래전 추억과 사진으로만 남았다.


그 후로 새 트리를 구입하는 일은 해마다 미루어졌다. 버릴 때는 곧 더 큰 트리를 마련할 요량이었지만, 삶은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그 사이 변화가 많았고 가족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지냈다. 어느새 아이들은 어른이 되었고, 이제 와 트리가 필요할까 싶기도 했다.


올해도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결국 일을 벌였다. 아이들은 언제까지나 우리에게는 아이이고, 나는 아이들이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조금이라도 더 많은 기쁨과 사랑을 나누고 추억을 쌓고 싶었다.


나는 무리를 해서 210cm 고급 모조 전나무 트리를 샀다. 혼자 낑낑대며 조립해 세우고, 갖가지 장식품을 하나씩 매달았다. 스마트 TV 유튜브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을 들으며 만드는 그 과정이 무척 즐거웠다. 장식을 마치고 나니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잠시 나는 창세기의 하느님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젖었다.


가족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속으로는 쓸데없는 일을 벌였다며 타박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맨 먼저 트리를 본 그이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부르며 박수를 쳤다. 아빠 성격을 닮은 큰딸은 예쁘다며 "엄마, 트리 옆에서 커피 마시며 책 보면 좋겠다"고 말해주었고, 나를 닮은 작은딸은 그동안 모아둔 장식품과 작은 전구 줄을 가져와 함께 매달며 즐거워했다.


작은딸의 도움으로 장식을 마치고 전구에 불을 밝히자, 각자의 방에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잠시나마 트리 주변으로 모여 담소를 나누었다. 칙칙하고 단조롭던 일상은 갖가지 장식품들로 알록달록해지고 작은 불빛들로 반짝반짝 빛났다.


작은 전구들이 줄줄이 달린 전깃줄을 두르자, 퓨즈가 나간 숲처럼 어둑하던 전나무 트리가 일시에 밝아졌다. 눈앞에 별들이 내려온 듯 마음은 천국의 기쁨으로 설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말씀으로 말미암아 지어진 것임을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새삼 실감한다. 트리에는 그 믿음의 증거들이 가득 매달려 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은 다시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축하한다. 아무리 어두워져도 언제나 다시 떠오르는 빛을 축하하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거리마다 집집마다 트리가 장식되고, 사람들은 그 둘레에서 소곤대는 별들처럼 반짝이는 영혼의 대화를 나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믿음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상록수는 상록수대로, 활엽수는 활엽수대로 살아내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한다. 동절기가 다가오면 활엽수는 스스로 잎맥을 차단해 잎을 떨군다. 색색의 꽃과 잎이 지고 세상은 어둡고 단조로워진다. 긴 겨울의 우울이 찾아온다. 그러나 괜찮다.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상록수가 있고, 우리는 그 나무를 불러 크리스마스트리로 세울 수 있으니까. 그 위에 빛을 달고, 그 주변에서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까. 그래서 12월은 일 년 중 가장 기쁜 달이 된다.


11월 중순만 되어도 요즘 거리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등장한다. 트리는 어느 것이나 아름답다. 예전에는 금색, 은색, 적색, 녹색 반짝이를 잔뜩 두르거나 흰 목화솜을 얹곤 했다. 요즘 트리는 장식이 한결 단순하다. 커다란 모조 전나무에 한 가지 빛깔의 장식품을 고르게 달고 은하수 같은 지네전구를 켜 둔다. 거리의 트리는 반짝이는 전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하지만 거기에 흰 눈까지 내려주면 눈에 보이는 세계는 그대로 천국이 된다.


눈 덮인 크리스마스트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동경을 불러온다. 겨울 트리를 보면 내 마음도 눈잎처럼 설렌다. 거리마다 나무마다 백색, 적색, 녹색의 은하수가 흐르고, 내 영혼 깊숙이 잊고 있던 기쁨의 시냇물이 흐른다. 장식 가운데 최고는 눈이다. 하얀 눈송이가 무성한 상록수와 새 희망을 위해 낡은 옷을 벗어버린 나목 위에 내려앉으면 세상의 모든 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된다. 온 세상은 하늘을 찬미하고, 칙칙하고 단조롭던 세계는 알록달록 반짝이기 시작한다.


거실에 트리를 장식하며 기도를 올린다. 가족과 친지들이 평안하기를, 딸아이들이 하는 일과 공부에서 보람을 찾기를, 두 아이 모두 더 늦기 전에 좋은 배필을 만나 제 가정을 이루기를. 나무가 새끼를 치듯 집집마다 트리가 반짝이기를. 장식품을 하나씩 달 때마다 기도를 하나씩 매달고, 반짝이는 전구 수만큼 많은 얼굴들을 떠올린다. 그 모든 기도가 이루어지고, 그 모두가 빛이 되기를 바란다.


삶이 하루하루, 한 해 한 해 고난의 연속일지라도 마음속에는 언제나 빛과 사랑, 밝음과 아름다움을 잊지 않기를. 어둠의 끝자락에서라도 아름다움의 방울들과 희망의 전구들로 삶을 장식할 수 있기를. 전쟁과 증오, 거짓과 비방으로 가득한 이 세계에도 평화와 사랑, 진실과 선함과 아름다움이 스며들기를. 가장 어두운 때, 가장 낮은 곳으로 빛으로 오신 그 사랑의 신비가 온 누리에 머물기를.


일 년 중 가장 어두운 때,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때일수록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자. 기도처럼 작은 장식품을 달고 전구를 밝혀 기쁨을 만들어내자. 그 빛과 희망으로 어둠을 견디다 보면 머지않아 부활의 때가 찾아와 온누리에 봄꽃이 만개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과 세상을 조금씩 구원해 나가자.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고 남을 돕지 않으면 이 세상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 인생은 지루하고 끔찍하며 사랑이 메마를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 아니겠는가?"

– 영화 《클라우스 패밀리 2》

♧ 트리를 올려다보던 아이들.

그 시절의 겨울은 푸른 크리스마스였다.

♧ 다음 해, 무지개다리를 건너 은하수로 날아간 치요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트리 아래에서 찍은 사진.

치요는 열일곱 해 동안 우리 곁에 머물다 간 작은 천사였다.

월, 화, 수 연재
이전 07화인생 오케스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