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를 묻는 곳이 결국, 마음이 되돌아갈 고향이었다.”
[심오재일기 ⑬] 2022.1.3.
태고향 진도
임미옥
진도는 나의 외가이며 태고향이다. 길어야 두 살 남짓 살았을 뿐이지만, 나는 왠지 그곳이 늘 좋았다. 아버지의 고향은 영광이고, 내가 학령기를 보내며 자란 곳은 광주였지만, 진도는 언제나 마음속 고향처럼 남아 있었다.
친정엄마는 오래전에 그곳을 떠나셨고, 내가 어렸을 적에는 연륙교도 없어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가 살아계실 때까지 나는 한 번도 진도를 가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진도는 엄마와 외가 친척들, 그 순박하고 정겨운 기운과 함께 내 안에 고향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도 십여 년이 지난 뒤,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처음으로 그곳을 찾았다. 마치 태어난 곳을 더듬어 돌아온 진돗개 백구처럼.
그 무렵 진도에 남아 있던 외가 식구는 엄마의 사촌 손윗올케, 그러니까 내 오촌(五寸) 외숙모 한 분뿐이었다. 외숙모는 오랫동안 혼자 지내며 군청 근처 시장에서 과일 노점을 하고 계셨다.
지금처럼 추운 날씨였던 어느 날, 좌판을 정리하던 외숙모는 우리 부부를 보자 벌떡 일어나 반겨주셨다. 일찌감치 남편을 여의고 묵묵히 세 남매를 키우며 살아오신 분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언제나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었다.
외숙모는 옛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계셔서, 내가 태어나 자랐던 집터와 엄마가 처녀 시절 살던 곳을 차근차근 일러주셨다.
찾아가 보니 내가 태어났던 곳은 진도군청 근처의 자그마한 절이 되어 있었고, 엄마의 친정은 ‘돌아온 진돗개 백구’ 동상이 서 있는 의신면이었다. 그곳에 서 있자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회가 밀려왔다. 정말로 오랫동안 타지를 떠돌다 지쳐 돌아온 백구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 뒤로 나는 종종 진도를 찾았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다른 인연들과 함께였다. 그러나 더 멀리 이사를 오고 보니 오가는 일이 점점 쉽지 않다. 어느새 외숙모마저 세상을 떠나고, 이제 진도에는 나의 옛날이나 엄마를 기억해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다. 사는 데 지쳐서인지, 그리움도 조금씩 옅어졌다.
해남 땅끝을 지나 울돌목을 건너면 엄마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야트막하고 둥그런 섬의 산야를 보면 엄마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으며, 파아란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면 옥색 한복 치마저고리를 입고 성장한 엄마의 고운 모습이 어른거렸다. “나 죽으면 그곳에 묻어 달라” 하시던 유언을 끝내 들어드리지 못한 채, 어느덧 올해 나는 엄마가 돌아가신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묘한 인연으로, 십 년 전쯤 진도에 내 시비가 세워졌다. 쓰는 일이 좋아 쓸 뿐, 그런 일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던 나였기에 더욱 뜻밖이었다.
여고 동창생의 남편이 진도의 한 폐교를 사들여 미술관을 꾸몄는데, 진도 임회면 여귀산(女貴山) 아래에 있는 나절로미술관이다. ‘나절로’는 화가이자 시인인 그의 호이고, 본명은 이상은이다. 동창들 모임에서 그와 안면을 트게 되었고, 그는 자신의 시 한 편을 들려주었다.
“내 방에는 시계가 없소. / 내 방에는 거울이 없소. / 내 방에는 달력이 없소. / 시계가 없어 초조함을 모르오. / 거울이 없어 늙어가는 줄 모르오. / 달력이 없어 세월 가는 줄 모르오. / 아— 내사, 절로 절로 살고 싶소.”
그 뒤로 나는 그에게 내 졸시집을 우편으로 보냈을 뿐이었다. 어느 날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남편이 근처 탑공원에 시비를 조성하고 있는데, 내 시 한 편을 새기고 싶다며 괜찮겠느냐는 물음이었다. 부끄럽지만 감사한 일이라 생각해 수락했고, 그렇게 내 시는 진도 바닷가 여귀산 자락, 탑공원에 시비로 세워지게 되었다.
시비에 새겨진 시는 다음과 같다.
쌍계사 왕벚꽃 보러갔더니
꽃은 너무 늦어 모두 떨어지고
연분홍 뺨에
하염없이 지던 눈물자국도
메마른 빈 잔에
녹차 향기만 쓸쓸하더라
빈 가슴
파랑새 부리 같은
노래로 채우며
다시 또 한 해를 보내야 하는
삶이란 애오라지
쓸쓸하더라
– 「왕벚꽃」 전문
어제 광주에 사는 언니들이 새해를 맞아 진도에 왔다며 전화가 왔다. 내 시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더니, 오늘은 시비 옆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영특한 조카손주가 학교 시 낭송회에서 이 시를 낭송하겠다고 한다는 글과 함께였다.
나는 이 시를 어린아이가 낭송하기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답하며 문득 생각했다. 다른 시들도 많은데, 그는 왜 하필 이 시를 골라 새겼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시보다 이 시비가 더 좋았다.
시비를 바라보고 있으면, 구천을 떠돌던 엄마의 영혼과 그 곁을 함께 떠돌던 내 영혼이 이곳에서 나란히 안식을 누리는 것만 같다. 오래 떠돌던 것이 마침내 머물 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 생각할수록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 진도군 임회면 탑립리에 있는
탑공원 – 디지털진도문화대전 - http://jindo.grandculture.net/jindo/toc/GC005015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