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의 자리

– 넘지 않기로 한 선

by 혜윰의 해밀

"자신만큼 자기 현실의 전문가는 없다."


[심오재일기 ⑭] 2026.1.6.

존중의 자리

– 넘지 않기로 한 선


그녀는 두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었다. 이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작은딸의 어긋남과 빠듯한 생계로 늘 지쳐 있었다. 마트 직원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지만, 직장 안의 인간관계마저 그녀를 더 움츠러들게 만들고 있었다.


상담 초기 몇 차례를 지나서야 그녀는 처음으로 자기 이야기를 꺼냈다. 그동안 자신을 중졸이라고 말해 왔지만, 사실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였다는 고백이었다. 그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을 버텨왔는지, 고개를 숙이고 말끝이 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느껴졌다. 마침내 그녀는 펑펑 울었다. 그것이 자신의 가장 큰 약점이었고, 그 열등감 때문에 더 사나워졌으며,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꾸 틀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남편과의 관계도 결국 그 지점에서 더 어려워졌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먼저 그럴 수 있겠다고, 오래 힘들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다음 스스로에게 분명히 했다. 이 고백을 이유로 그녀를 약한 사람으로 규정하지 않겠다고. 학력은 그녀의 삶을 설명하는 한 요소일 뿐, 그녀의 전부는 아니었다. 실제로 그녀는 학력과 무관하게 책임 있게 아이들을 키우며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그녀의 처지를 연민으로 덮어버리거나, 약점으로 환원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실이 그녀의 삶을 규정하지 않도록, 그 곁에 서 있기로 했다.


상담은 그렇게 이어졌다. 아이 문제, 직장 문제, 당장의 생계와 장기적인 선택들을 하나씩 짚어 갔다. 나는 방향을 대신 정해 주지 않았고, 다만 현실적인 선택지를 함께 살폈다. 그녀는 학력을 묻지 않는 곳으로 직장을 옮겼고, 작은딸의 학교 문제도 서두르지 않고 시간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던 상담 과정 한가운데서, 진짜 위기가 찾아왔다. 이혼한 남편이 혼자 지내던 중 중병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 소식을 전하며 그녀는 몹시 흔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아버지라는 이유만으로도 외면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다시 그 삶 속으로 들어갈 자신도 없었다. 한 번은 아이들 때문에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병상에 누운 남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등에 손을 대야 했는데, 그 순간 몸이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대로 서 있다가 돌아왔노라고, 그게 너무 미안하면서도 견딜 수 없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심하게 흔들렸다. 인간적으로도, 종교적으로도 그를 다시 돌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상담자로서 조심스럽게라도 '옳은 선택'을 말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유혹도 강하게 밀려왔다. 그때는 상담자의 윤리가 가장 날카롭게 시험받던 순간이었다. 나는 그 위기 속에서 몇 차례 슈퍼비전을 받으며 스스로를 점검했다.


그리고 그 국면에서 분명히 선택했다.


그때 나는 그녀에게 당위의 말을 건네지 않기로 했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말해 주는 자리에 서지 않기로 했다. 그녀의 삶에 대한 최종 판단은 그녀의 몫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그녀는 끝내 남편을 다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편은 혼자 힘으로 치료를 이어가며 차츰 회복해 갔고, 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돌보았다. 그 위기를 지나며, 그녀는 다시 자기 삶을 정비해 나갔다.


이후 그녀는 중등·고등 검정고시에 도전했고, 합격했다. 그리고 방송통신대 사회복지학과에 진학했다. 작은딸은 대안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큰딸은 간호대학에 진학했다. 그 모든 과정은 누군가의 지시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위기를 통과하며 스스로 선택한 길의 연장이었다.


상담이 끝난 이후로도 인연은 조용히 이어졌다.


몇 해가 지난 어느 7월, 그녀는 카톡으로 “이번 8월에 졸업이에요”라는 짧은 자축의 말과 함께 가족의 근황을 전해왔다. 그 뒤로는 해마다 내 생일이면 커피와 케이크 상품권을 보내온다.


말없이 이어지는 안부 속에서, 나는 그 선택들이 그녀의 삶에 단단히 뿌리내렸음을 느낀다.


지금 그녀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고, 큰딸은 간호사가 되었으며, 작은딸은 기술 직업을 가지고 있다. 가끔 안부를 전해 올 때면, 나는 그 시절의 위기를 떠올린다. 특히 그때, 내가 무엇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를.


돌아보면, 내가 한 일은 많지 않다.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지도 않았고, 인생의 방향을 정해 주지도 않았다. 다만 믿었고, 이해했고,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 애썼을 뿐이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연민으로 다가가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옳은 말을 해 주고 싶은 유혹도 있었다. 특히 누군가의 고통이 너무 선명하게 보일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무책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나는 알게 되었다. 사람을 살리는 관계는 대신 결정해 주는 데서 시작되지 않는다는 것을. 불쌍히 여기거나, 교화하거나, 선의를 앞세워 삶에 개입하는 순간, 그 사람은 자기 삶의 주체 자리에서 밀려난다는 것을.


그녀는 스스로 선택했고, 스스로 감당했으며, 그 선택의 결과 위에 지금의 삶을 세웠다. 나는 그 곁에 있었을 뿐이다.


아마도 그것이 상담 관계를 포함한 모든 관계가 허락하는 가장 깊은 윤리일 것이다. 넘지 않기로 한 선을 지키는 일, 그의 삶을 그의 자리로 조용히 돌려놓는 일.


그 사실을, 나는 한 사람의 삶 한가운데서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다양한 관계 속에서 그 선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 이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상담 과정에서 만난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이 식별되지 않도록 일부 상황과 맥락을 재구성한 것이다.

빌헬름 하머스호이, 「실내, 등을 보인 여인」, 1904.

– 슬픔을 묘사하지 않고, 존엄을 훼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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