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설거지
“끝나지 않는 설거지 속에서 우리는 하루씩 살아내고, 조금씩 자신이 된다.”
[심오재일기 ⑯] 2021.10.28.
설거지 명상 1
– 삶의 설거지
“또야? 하기 전에 미리 가져다 놓으면 좋잖아. 어떻게 꼭 마친 줄을 알고 딱 맞춰서 가져오는 거야?”
시지프스가 따로 없다. 다 치우고 나면 또 쌓이고, 다시 치우면 또 쌓인다. 때로는 욱 하고 반항심이 치밀지만, 누가 대신 해줄 사람도 없으니 쌓아두면 결국 나만 힘들다. 그래서 그때그때 해치우는 수밖에.
다행인 것은 그 일을 반복할수록 요령이 생겨 조금은 수월해진다는 점이다.
내 인생의 설거지 총합이 줄어드는 걸까. 굴러떨어지는 그 바닥이 조금씩 높아지고, 끌어올리는 봉우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글쓰기도 그렇고, 남의 글을 지도하는 일도 그렇다. 매일 반복되는 퇴고와 첨삭의 끝없는 순환 속에서 나와 참여자, 모두의 필력이 조금씩 자라난다. 그 느린 상승이 내게는 위로다.
업(業)의 설거지, 인생의 설거지, 마음의 설거지는 끝이 없다.
그 끝없는 설거지를 덜 힘들고 더 의미 있게 하는 일, 그것이 나의 과제다.
요즘은 식기세척기를 두고 ‘식세기 찬가’를 부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 기계를 믿지 못한다.
깨끗이 씻길까, 물이 넘치면 어쩌지—그런 의심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릇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식구들의 식사 시간, 간식, 커피 한 잔까지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인 그릇들이 끊임없이 간헐적으로 나온다. 그걸 모아 한 번에 한다는 건 내 습관에 맞지 않는다.
결국엔 어린왕자의 작은 화산처럼 한 번씩 터지고 만다. 그러고 나면 금세 후회한다.
고무장갑도, 뜨거운 물도 없이 찬물에 맨손으로 수십 개의 그릇을 씻던 엄마와 언니의 세대를 떠올리면 호강에 겨운 울분이 부끄러워진다.
싱크대 앞 작은 유리창으로 무성히 돋아난 목련잎이 옅게 물들어가고, 살짝 등 굽은 소나무가 사색에 잠긴 반가사유상 같다. 그 나무들 사이로 간간이 차들이 지나고 사람들이 스쳐 간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다정히 걷는 노부부, 장난스러운 손자와 할아버지—그 모두가 정겨운 삶의 풍경들이다.
어쩌면 거기에 쏴아쏴아 달칵달칵하는 내 설거지 소리가 더해져 사람살이의 풍경을 완성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설거지 그릇이 점차 줄고 결국엔 사라지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내 삶도 끝나게 될 것이고, 더는 그릇 닦음을 통해 나를 닦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조용히 수세미를 든다.
그릇 하나를 헹구며 내 마음도 함께 헹군다.
끝나지 않는 설거지 속에서, 나는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
♤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 따르는 하녀」, 1658년경,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 고요한 일상의 순간에도, 빛은 노동의 손끝에 깃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