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는 사랑이 머물던 마음이 경계를 넓혀, 더 멀리까지 닿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다."
[심오재일기 ⑫] 2025.12.27.
빈 둥지는 더 넓어진 둥지
임미옥
엄마고양이 치치가 해윰·해밀·해나루·한결, 네 마리 아기고양이를 안고 잠들어 있다. 현관 포치 아래 마련해둔 뜰고양이들의 겨울 아파트 한 칸.
고양이들은 여러 공간을 두고도 굳이 좁은 집 안에 모여 있다. 답답하기보다는 한없이 포근하고 정다워 보인다. 마치 딸아이들이 어렸을 때, 한 침대에서 부둥켜안고 잠들던 모습 같다.
2025년 크리스마스 이브는 적막한 집에서 남편과 단둘이 보냈다. 대림 시기 초반에 꾸며둔 트리 꼭대기, 메시아의 별에 불을 켜고 크리스마스 케이크에 촛불을 밝혔다.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낮게 부른 뒤, 조용히 촛불을 껐다.
메시아의 별 반짝임도, 크게 틀어놓은 캐럴송도 왠지 공허했다.
그동안 집은 늘 비좁을 만큼 꽉 차 있었다. 그러던 공간이 한순간에 비어 버렸다. 작은딸은 독립해 나가고, 큰딸은 일과 공부, 그리고 자기 삶으로 분주하다.
빈 둥지에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데이트 나간 큰딸이 사진을 보내왔다. 반짝이는 불빛으로 장식된 명동성당의 풍경이었다. 잠시 뒤, 작은딸은 본당 미사에서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성가 녹음을 보내왔다. 구유가 꾸며진 마당에서 울려 퍼진 음악이었다.
그 순간 마음이 환해지며 집이 다시 가득 찬 느낌이 들었다. 그걸로 충분한 론리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생각을 돌린다. 빈 둥지가 아니라, 더 넓어진 둥지다. 딸들이 머무는 곳마다 내 마음도 함께 있으니, 나의 둥지는 그만큼 확장된 것이다.
요즘은 자식들이 미국이나 중국 등 먼 곳에 자리 잡고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거리를 견디며 자기 삶을 꾸려가는 엄마들을 떠올리면, 안쓰럽다가도 문득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들 역시 마음속에 더 넓은 둥지를 지어두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세계를 품은 둥지, 글로벌 네스트를.
둥지는 꼭 자식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돌보는 마음이 머무는 곳, 혹은 스스로의 마음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자리라면 그 또한 하나의 둥지일 테니.
그렇게 생각하니 허전하던 마음이 넓고 충만해진다.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들이대자 놀란 아기고양이들이 이리저리 흩어진다. 어미는 말없이 더 높은 둥지 위로 올라 새끼들을 내려다보다가, 다시 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