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싶은 나무
“겨울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자기 자리를 잃지 않는 나무는 침묵으로 서 있는 증언이다.”
[심오재일기] 2026.1.26.
침묵으로 서 있는 증언
– 그리고 싶은 나무
음악을 들으며 영상을 보다가, 이 화면에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겨울, 잎을 모두 떨군 채 눈 덮인 설원에 홀로 서 있는 나무였다.
이 나무의 이름은 무엇일까.
느릅나무일까, 자작나무일까, 아니면 참나무일까.
잎이 없는 겨울나무의 실루엣만으로는 단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곧 생각이 그쪽에서 멀어졌다. 이름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궁금한 것은, 이 나무의 형태와 태도였기 때문이다.
단단하고 반듯한 중심 줄기에서 사방으로 팔을 뻗은 둥근 수관, 그 위를 촘촘히 채운 잔가지들까지. 눈 쌓인 들판 한가운데 홀로 서 있으면서도 이 나무는 조금도 궁하거나 외로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단단하고 풍요롭다.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나무 뒤편에는 묘목처럼 자그마한 오두막 한 채가 놓여 있고, 그 앞을 지나 넓은 눈밭의 가운데쯤에는 빽빽한 침엽수림이 검은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다. 다시 시선을 더 멀리 보내면, 눈 덮인 들판과 몇 채의 집들이 보이고, 비슷한 느릅나무 한 그루가 또 한 번 서 있다. 그 뒤로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길게 띠처럼 이어진다. 수풀 너머의 하늘은 눈을 잔뜩 머금은 채, 또 하나의 배경으로 조용히 자리를 잡고 있다.
하늘이 개고 봄이 오면, 그는 연록색 새 잎을 틔울 것이다. 여름이면 무성한 녹음을 드리워 밭일을 하던 농부들이나 길을 지나던 나그네가 잠시 땀을 식히는 그늘이 되어줄 것이다. 가을에는 노을과 함께 아름답게 물들어, 그해의 마지막 열기를 조용히 피워 올릴 것이고, 이윽고 겨울이 오면 다시 지금 이 자리로 돌아와, 지나온 시간과 스쳐간 존재들을 묵묵히 품은 채 서 있을 것이다.
상담에서 사용하는 심리검사 가운데 HTP가 있다. 집(House), 나무(Tree), 사람(People)을 그리게 하고, 그 그림을 통해 내담자의 심리를 읽는 검사다. 나는 그중에서도 유독 나무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수련과 상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나무 그림을 보았고, 나 역시 여러 번 나무를 그렸다. 사람마다 그리는 나무는 모두 달랐고, 같은 사람이 그린 나무도 상담의 과정과 시기에 따라 달라졌다. 어떤 이는 한 번도 같은 나무를 그리지 않았다.
나 역시 그때마다 다른 나무를 그렸다.
남산 능선 위에서 바람을 견디며 자란 소나무, 꽃이 만개한 벚나무와 배롱나무, 자잘한 잎과 꽃을 가득 매단 귀롱나무, 잎이 무성하고 수피가 푹신한 굴참나무.
그리고 싶은 나무는 늘 많았고, 그 나무들은 하나같이 잎과 가지가 촘촘했다. 그래서 나는 늘 남들보다 오래 걸렸다. 잔가지를 그리고, 그 위에 잎을 얹고, 그 사이를 비워두지 않으려 애쓰느라.
한번은 학회원들과 함께하는 심리검사 고급세미나 시간이었다. 그날도 나는 그리고 싶은 나무를 거의 강박처럼 붙들고 있었다. 넓은 수관, 많은 가지, 그 위에 끝없이 돋아나는 잔가지와 작은 잎들. 어느새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그리기를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술렁이는 기척에 고개를 들었을 때, 옆 사람들의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 가운데 유독 시선을 붙드는 그림 하나가 있었다. 세로로 세운 흰 도화지 위에, 굵은 선으로 대충 그린 커다란 고목나무였다. 중심부가 뻥 뚫려 있었는데, 그녀는 그 자리를 날짐승과 들짐승을 위해 비워둔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나무 주변에는 짐승들과 풀들이 조금 그려져 있었다.
교수님이 그 그림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를 오래 바라보았다. 상처로 인해 비워진 자리이든, 스스로 내어준 공간이든, 그녀는 큰 구멍을 가진 채 그것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겠구나. 그리고 그 빈자리에 타인을 들일 줄 아는 사람이겠구나. 그런 자신을 표현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 그림을 본 뒤, 나는 내가 그리던 나무를 접었다. 그리고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나는 너무 지엽말단에 매달려 있는 건 아닐까.
나의 품은 너무 촘촘한 것은 아닐까.
언젠가 도달해야 할 진실의 중심을 피해, 주변을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그 이후로 나무 그림을 볼 때마다 나는 그 고목을 떠올린다. 고흐의 아몬드나 올리브 나무를 보아도, 사이프러스를 보아도, 달리의 사이프러스나 프리드리히의 나무들을 보아도 그렇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때 받은 울림은 오래 남았다. 너무도 보편적인 진실을 그녀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펼쳐 보였고, 나는 그것을 먼 데서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 이 나무를 보며 다시 그녀의 그림이 떠올랐다. 그리고 내가 진실로 그리고 싶었던 나무는 바로 이런 모습이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사진 속에 덧붙여진 문장, “모든 것들은 있을 자리에 있어야 살아 숨쉰다”는 말이 그 확신에 힘을 보탠다.
내가 서 있을 자리, 나무가 서 있을 자리는 어디일까.
이 나무는 눈 쌓인 들판의 중심에서 약간 물러나 서 있다. 주변과 단절되지 않되, 의지하지도 않는다. 잎을 모두 내려놓았지만 공허하지 않다. 그동안 구축해온 가지들, 잔가지까지 포함한 그 뼈대 자체가 이미 하나의 생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겨울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그는 자기 자리를 잃지 않는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흔들리지 않는다.
그는 자리를 지키는 나무이고, 견디는 나무이며, 침묵으로 서 있는 증언이다.
♤ 겨울이라는 시간 속에서도 자기 자리에서 살아 숨쉬는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