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 나의 이력

by 혜윰의 해밀

“59세에 찾아가는 충분히 괜찮은 나의 발자국.”

[심오재일기 ②] 2018.12.12.

나는 누구인가 – 나의 이력

나는 59세의 기혼 여성으로, 미혼인 두 딸아이의 엄마이며, 1998년 《시문학》으로 등단한 시인이다. 2013년에는 가톨릭상담심리사 2급 자격증을 취득했고, 문학과 영성심리상담을 접목한 문학치료의 가능성을 펼치기 위해 2018년 대학원에서 문학치료학 전공 과정을 마쳤다. 졸업 논문의 제목은 『회고 주제 문학치료 프로그램이 노년기 자아통합감 성취에 미치는 영향』이다.


문학 창작에 있어서는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냈고, 꾸준히 시를 쓰며 발표해왔다. 문화센터 등지에서 시·수필 창작법을 강의하기도 한다. 상담의 영역에서는 수련 과정을 포함하여 개인상담과 집단문학치료를 10년 가까이 지속해왔다.


외면적인 이력은 이러하지만, 내면의 이력, 삶의 이면은 아직 거의 드러나지 않았다. 그 부끄럽고 아프고 서러운 여정의 발자국들은 아직 충분히 쓰여지지 않았다. 이력서에 적힌 몇 줄의 경력 이면에는 그보다 더 깊고 또렷한 발자국들이 무수하다. 피와 눈물, 땀이 고여 있고, 실수와 잘못, 수치와 비참, 그리고 회피와 주저, 서툰 선택의 흔적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외적인 성취는 내적인 진실과 맞닿을 때에만 참된 힘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은 털어놓기와 참회를 통해 비로소 제 의미를 얻는다. 숨겨졌던 내면을 드러냄으로써 외면과 내면이 일치하고 통합될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자리에 똑바로 설 수 있을 것이다.


그 자리가 바닥이라도 괜찮다. 그곳이 진정한 나의 출발점이라면, 그 초라한 내면의 나를 외면하지 않고 끝내 보듬어 안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한 걸음씩, 보다 적절한 속도로 어딘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이제 조금쯤 덜 두려워하고 덜 망설이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부끄러움과 망설임, 두려움과 기쁨까지도 온전히 내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것들을 느끼고, 표현하고, 다루어내는 존재로 살아가고 싶다.


‘~이다(be)’가 선행된 이후에야 ‘~하다(do)’가 가능하다고 했다, 도널드 위니캇은. 내가 진정한 나로 존재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진정으로 무언가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의 느낌을 느끼고,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보이는 나, 보여주는 나만으로 존재하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누가 보든 말든, 누가 좋게 보든 나쁘게 보든,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아줄 수 있을 때, 우리는 자기 조절의 힘을 얻고 변화의 힘도 가질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타고난 가능성을 꽃피우며 살아갈 수 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산다고 말할 수 있고, 그 삶에서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피우고 맺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이곳에, 내 성숙의 여정을, 생각나는 대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가려 한다. 느꼈던 것들을 되짚어가며, 어지럽고 복잡했던 감정의 발자취를 찬찬히 돌아보려 한다.


나는 과도하게 왜소해진 자기비하적인 글쓰기는 하지 않겠다. 그렇다고 세상의 부정적 영향과 고통을 외면한 채, 무지한 듯 목청을 높이는 글도 쓰지 않겠다. 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 보통의 목소리로 내가 할 말을 할 것이다.


덧붙임

2025.12.1. 다시 시작하는 자리에서

이 글은 2018년,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도 낯설던 시절에 써서 그 서랍에 남겨둔 기록이다. 그때는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답을 건네보려 했다. 그러나 그러고는 멈춰버렸다.


개인적으로 더 나은 시인, 상담자가 되려고 하면 할수록 이상하게도 더 나은 엄마에서 멀어져 갔다. 하긴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를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갈등과 자책이 나를 망설이게 했을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나는 다시 이 질문 앞에 섰다. 이제는 조금 덜 망설이고, 덜 두려운 마음으로, 그 여정을 다시 시작해 보려 한다.

그 마음의 움직임과 더불어, 몇 달 전 나는 ‘나를 쓰는 글쓰기–문학 순례길의 통합 여정’ 수업을 처음 열었다. 그 흐름을 따라, 이곳에서도 내 기록을 천천히 풀어놓기 시작했다.


2018년의 나,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 이 말을 건넨다.

“충분히 괜찮다, 그렇게 다시 시작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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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차일드 하삼(Frederick Childe Hassam), 「글쓰기 책상에서((At the Writing Desk)」, 1910

– 햇빛 속에서 자기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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