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화

– 다르게 될 수 없음에 대하여

by 혜윰의 해밀

“수많은 이름과 역할을 건너, 마침내 ‘나’라는 여행자에게 도착한다.”


[심오재일기 ③] 2021.12.15.

개성화 – 다르게 될 수 없음에 대하여


가장 나다운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또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시인, 가톨릭 영성심리상담사, 문학치료사 중 어떤 것이 당신의 정체성입니까?”

내가 프로필에 이것저것 적어 놓았더니, 융 분석가는 대뜸 이렇게 물었다.


문학과 심리학, 문예창작과 문학치료, 시와 상담 사이에서

나는 “시”라고 대답했지만, 실은 나도 잘 모르겠다.

오랜 세월 그 모든 것이 다 중요하다고 여겨 붙들다 보니

이제는 어느 하나에도 완전히 경도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늘 어정쩡한 줄타기를 한다.

이쪽도 저쪽도 끝내 깊이 몰두하지 못한 채 남게 된다.

두 세계의 결은 너무도 다르다.


심리학과 상담, 문학치료의 세계는

학문과 객관성, 합리적 현실의 영역이다.

반면 문학, 특히 시의 세계는 예술과 직관, 주관성과 비합리의 영역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그 사이에서 시소를 타는 기분으로 서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나다.

여전히 미숙하고 혼란스럽지만, 언젠가는 그 안에서 조화와 균형, 그리고 내 나름의 질서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융 분석심리학에서 인간 존재의 목적은 개성화(individuation),

즉 가장 자기답게 되는 일이다.

그것은 ‘다르게 될 수 없음’이다.

남을 흉내내고, 닮고 싶어 애쓰는 모든 이상화는 결국 ‘나’로부터 멀어지는 길이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기능하는 자아(ego)와 역할(페르소나)이 진정한 ‘나(Self)’인 것도 아니다.


엄마–시인–상담자.

나는 예전 브런치 프로필에 이렇게 적었다.


“이 셋을 아우르는 말은 엄마다.

엄마다운 엄마가 된다면, 시인다운 시인, 상담자다운 상담자가 될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자이다.”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엄마–시인–상담자–문학치료자–아내–친구–선후배–선생……

끝없이 확장되는 이 모든 역할들 가운데 무엇이 진짜 나인가?


거기엔 ‘나’라는 주체가 빠져 있다.

나다운 나, 그것이 먼저 자리 잡아야 비로소 ‘모두의 모든 것’이 될 수 있을 텐데—

나는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찾아가는 여행자이다.

『심오재 일기』는

바로 그 길 위에서 써내려가는 나를 찾는 고백이다.


#심오재일기 #나를찾는글쓰기 #내면의서재 #치유와사색

#문학치유 #시인의일기 #삶의성찰 #자기탐색


프레더릭 차일드 하삼(Frederick Childe Hassam), 「Writing Desk(글쓰기 책상)」, 1915

– 모든 길이 안쪽으로 열릴 때, 여행자는 조용히 자기 책상 앞에 앉는다.


월, 화, 수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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