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익숙함
오늘의 그녀와 내일의 그녀는 다른 사람 같다.
어제의 그녀도 오늘과 다르다.
그녀는 너무 변화무쌍해 종잡을 수가 없다.
예측불가의 그녀는 매력적이다.
그게 신비롭게 느껴지는 시절이 있다.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포장되는 그런 시기, 예민함이 민감함으로 오해받는 그런 시기.
그녀는 그런 추앙에 익숙해져 더 변화무쌍하고 예민해졌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임에도 변화무쌍한 그녀는 내게 너무도 어렵다.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그녀의 니즈와 나의 판단은 늘 오차가 생겨 그녀는 토라져 버리기 일쑤다. 민감성이 이상하게 발달한 건지, 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그녀는 분노한다.
나를 왜 이렇게 괴롭히냐고 했더니 내가 그녀를 괴롭힌다 한다. 내가 너무 답답하다 한다.
나도 그녀 앞에만 서면 익숙했던 나의 방식들이 무력화되는 것을 느끼며 난감하고, 좌절감을 느낀다.
이성을 흔드는 무언가가 나를 휘감는다.
둘 중에 하나가 죽을 때까지 그녀와 나의 관계는 건강해질 수 있을까? 어디부터 잘못된 것인가?
이런 방식으로 익숙해지고 싶지는 않다.
이런 방식으로 당연해지고 싶지는 않다.
그녀는 종종 나를 차단하고,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나는 속절없이 차단당하고, 나쁜 X가 되어버린다.
오늘은 그녀가 선을 넘어버렸다.
"선 넘지 마라!"
경고를 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그녀에게,
단절을 선언한다.
얼마나 갈지 모르겠지만,
마지막의 그 외침이 얼얼하다.
너는 늘 이런 식이지!
우리의 관계는 이렇게 비난과 악다구니가 익숙해져 버린 건가... 익숙해 버린 그녀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싶다.
익숙해진다는 건 무엇일까?
익숙하다는 반복 하다의 다음 순서인 것 같다.
나에게 익숙하다는 건 긴장감의 감소이고 편안하다는 상태이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익숙하게 휴대폰을 집어든다. 아직도 몽롱한 시선으로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은 상태로 시간을 확인하거나 알람을 끄는 행위로 하루를 시작한다. 알람이 울리면 예전엔 아이들 등교준비에 바로 쭈욱 기지개 한번 하고 벌떡 일어났는데, 아이들이 각자 자취방과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된 이후로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주방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더뎌졌다. sns의 알림을 서치 하고, 혹시나 밤새 내게 온 연락이 있는지(거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자연스럽게 시선과 시간을 빼앗긴다.
휴대폰의 등장으로 편리해진 것들도 엄청 많아졌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현저히 줄었고, 자연스럽게 게으름이라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듯... 틈만 나면 휴대폰을 보고 있다고 스스로도 알아차릴 정도니 이게 중독인 거겠지? 휴대폰 중독자에게 책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은 책을 휴대폰으로 들고 오는 방법을 모색하게 했다. 어제 문득 도서관에 가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하는 것이 너무도 귀찮게 느껴지는 바람에 '밀리의 서제' 가입을 충동적으로 해버렸다. 원래 구독서비스 취소하기 귀찮아 가입도 하지 않는 게으른 인간인데 어쩔 수 없이 기류에 따라갈 수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아직은 화면으로 책을 본다는 것이 너무도 익숙지 않아 몇 글자 읽다가 내가 무엇을 읽고 있는지 잊어버리고, 생각이나 관심이 다른 데로 튀어가기 일쑤지만, 익숙해지는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니 한 달이라는 체험기간을 잘 활용해 보려 한다.
글을 쓰다 보면 말과 다르게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그림도 글도 남아있어서 다시 보고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갈망하는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행동으로 옮기는 건 어찌나 어려운 건지... 익숙해지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낯선 그녀를 소환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