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만났다. 뒤늦은 공부를 하고 싶었다. 공부를 위한 공부는 아니었고, 지금의 내 모습에 만족을 못했고, 진로의 고민을 하던 중, 일단 도전해 보자에서 덤빈 시작이었다. 사회복지상담학과 3학년에 편입을 했다. 학사졸업의 내겐, 대학원이 가능했지만, 사회서비스 대학에서의 산업체 대상의 과정이 더욱 흥미 있었고 적절했다. 오리엔테이션부터 난 맨 앞자리를 선택했다. 고개만 살짝 돌리면,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래서, 차라리 맨 앞자리가 편했다. 낯선 느낌이상의 떨림이 있었다. 대부분 최소 쉬흔 살 이상의 분들이다. 나보다 늙은 사람들의 시작을 지켜보며, 난 몰래 안도의 호흡을 가져본다. 이제 와서, 혹은 과연이라는 의구심은 떼어내지 못했다. 한 사람씩 일어나서 자기소개를 했다. 이모작의 단어가 나왔고, 부족했던 공부의 한을 채우는 이야기가 나왔으며, 아내에게 끌려온 남편의 말도 나온다. 이미 2년을 치르고 3학년으로 올라온 선배들의 여유 있는 말과, 일흔에 가까운 부부의 인생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떨기만 했고, 우물거렸다. 무슨 말을 했지만, 하고 싶은 말과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공기가 흘렀다. 각자의 자기소개시간부터가, 지금 있는 자리의 실상을 뼈저리게 말해주는 듯했다. 그들은 강의실로 이어진 계단을 중간에 멈춰 쉬기도 했고, 어쩔 땐 동네 아주머님의 농담에서 더욱 박장대소를 했다. 삶의 이야기를 할 때 깊게 고인 분노를 재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기도 한다. 사회복지의 수업은 나는 아니겠지 라는 마음에 뒤통수를 때리는 이야기들로 이어진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를 포함한다. 결핍의 가능성은 모두에게 있고, 도움의 손 또한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수업은 계속 말한다. 인간을.
난, 과대 자리를 덥석 물었다. 열심히 하라는 말 하나에, 뒤도 안 보고 손을 높이 들었고, 1년 동안 이어졌다. 존중의 마음을 가득 담은 낯선 그들을 상대로,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것을 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작은 글씨까지 염려를 하며, 나의 오지랖은 시작되었다. 그들의 이해영역과 기본 기술에 대한 파악을 하기 위해서, 난 최소단위에서부터 소통의 시작을 했다. 메신저의 단톡방에서의 설정 부분부터, 스크린샷과 별풍선을 달며, 상세한 설명을 붙였고, 매번의 수업에서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케어하려고 노력했다. 한 분이라도 좀 더 같이 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낯선 얼굴과 이름들을 그 누구보다 빨리 알기 시작했고, 긴 결석이 있으면 바로 전화를 했다. 결정사항에 대해서는, 한 분 한 분의 의견을 최대한 듣고자 노력했고, 작은 목소리도 듣고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분에 대한 예우라 생각했고, 태어나서 처음 완장을 찬 사람의 기쁨처럼 재밌게 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의 노력은 생각보다 많은 충돌을 일으킨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런 예상은 맞았고, 난 알지 못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충돌은 이쁜 충돌로만 여겼던 내게 위기의 시기로 다가왔다. 결정의 과정에서, 타깃의 라이트가 비추어지면 그들의 입은 닫히고 침묵의 표정은 켜졌다. 나의 시선이 다른 쪽으로 향하면, 그들의 입은 열렸고, 침묵의 표정은 시선의 끝으로 옮겨졌다. 재밌고, 귀엽다고도 생각했다. 26명의 26가지 말들을 듣는 것을 경험의 기회로 여겼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이 편해지고, 인사가 거듭되며 스트레스로 이어졌다. 마음의 균열은 안정 후에 일어났다. 웃을 수 있는 마음에서 불편함의 마음도 핀다.
썼던 단어들을 습관처럼 계속 써먹는다. 대충 글이 막히면, 버릇처럼 내미는 혀를 닮은 말들이 있다. 혹은 대충 채워지는 식의 내 모습을 꼭 닮은 형태가 있다. 그런 글들이 늘어나면서 생각의 변수들에 대입하는 식이 되어버리는 각종 방식들이 드러난다. 단순 노동으로 향하는 편안함이 주는 지루함에 하품으로 이어진다. 글에 의심을 두기 시작할 때이다. 왜 쓰는지에 대해서 캐묻고, 무엇을 쓰는지에 대해 조사한다. 하고자 하는 말에 대해 검수하고, 글 앞에서의 태도에 대해 녹화해 본다. 독자를 찾아본다. 구성에 대해 견적을 내보고, 오류를 낱낱이 찾아본다. 브런치 축하 메일을 받던 날 두근거렸던 심장 소리를 녹음해 둘걸 그랬다. 그래서 긴장감이 필요함을 알았다. 익숙함에서 사고가 나고, 다시 익숙함으로 복귀를 하는 길은 길다. 익숙함의 길에 도달했을 때엔 찬물로 샤워가 필요하다. 어는점이 필요한 시기다. 아무리 해도 잘 모르겠는 느낌을 갖고 싶다. 잘 풀리는 일은 기대감의 답이 되어선 안된다. 그냥, 쓰다 보면 나도 모를 언젠가의 도착에 가슴이 내려앉는 감동을 받고 싶다. 아직은 이르고, 서툴다. 만족하지 못한다. 부족함이 빼곡하고, 남아 있는 창피함이 많다. 꺼내지 못한 불안이 가득하다. 기쁨의 계절은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내가 글을 쓴다고? 정신 바짝 차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