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로 아이는 자랄 수 없다
만삭의 몸으로 여섯 살 아이의 손을 잡고 장을 보던 날이었다.
숨이 차고 허리가 당겼지만, 카트를 밀며 아이와 나란히 걷는 시간은 힘들면서도 따뜻한 일상이었다. 계산대 앞에서 아이는 반짝이는 눈으로 장난감을 만지작거렸고, 나는 몇 번이나 “눈으로만 봐”라고 말했다. 그 말이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알게 된 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정리하고 잠깐 숨을 고르려던 순간, 집이 너무 조용했다. 평소 같으면 곁에서 쉬지 않고 재잘거렸을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엄마의 촉은 그럴 때 유난히 빨리 작동한다.
아이 방 문을 살짝 열었을 때, 침대 구석에서 꼬물거리는 작은 등이 보였다. “뭐 해?”라는 말에 아이는 화들짝 놀라 무언가를 감췄다. 그 순간 이미 알았다. 이불을 들추자 계산대 옆에서 봤던 조잡한 플라스틱 장난감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도 났고, 실망도 했고, 무엇보다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준 선물이라고 가져왔던 물건들, 가지고 놀다가 모르고 주머니에 넣어왔다는 말로 상황을 넘기려 했던 기억들. 이걸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게 세상이 어떤 규칙 위에 서 있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마트로 갔다. 점장님께 상황을 설명하고 장난감 값을 계산하며 “아이가 물건을 훔쳐갔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엄마로서의 자존심은 바닥에 떨어지는 느낌이었지만, 아이에게는 그 장면이 오래 남길 바랐다. 점장님은 아이 눈높이에 맞춰 앉아 다정하지만 단호하게 “다음에 또 이러면 안 돼”라고 말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안도한 듯 보이자 내 안의 화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아이 손을 잡아끌고 파출소로 향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교육이 아니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이성적이지 못한 엄마의 행동이었다. 경찰관의 한마디 훈계로 상황은 마무리됐지만, 그날의 나는 아이보다 더 미숙했다.
시간이 흘러 아이는 자랐다.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해 자취를 시작한 청년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오늘 뭔가 관계를 정리했는데… 이상한 감정이 들어요.” 깔끔한데 찜찜하고, 후련한데 설명이 안 되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전 그 마트의 장난감이 떠올랐다. 물건을 훔쳤던 아이, 혼나며 눈을 피하던 아이, 말없이 집으로 돌아오던 아이. 그리고 지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그 감정을 설명하려 애쓰는 어른이 된 아이.
나는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를 잘 키운다는 건 실수하지 않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실수 이후에 무엇을 배우게 하느냐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부모도 그 과정에서 함께 자란다는 사실을.
나는 아이에게 상황에 대해 더 질문하거나 답을 주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네가 엄마한테 전화해 줘서 참 좋다. 엄마 생각났다는 거잖아. 종강하면 집에 와. 맛있는 거 해줄게.”
아이의 인생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점점 줄어들지만,
돌아올 수 있는 자리를 지켜주는 일만은 끝까지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