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시점
20년 전 그녀가 이곳으로 왔다.
어린 시절에 마음껏 뛰어놀던 곳이라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투병시간을 지나온 얼굴은 좀 초췌해 보였지만
타고난 환한 기운은 금세 모두의 마음을 열게 했다.
밝게 웃다가도 문득 어두워지던 표정에는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걱정이 묻어 있었다.
그녀가 오고 난 뒤 이곳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한적했던 이곳에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둑을 쌓고 수로를 만들었다.
강변도 정비라는 이름으로 데크가 설치되고 상징물과 체육시설이 들어섰다.
사람들이 몰려왔다가
어느 날 갑자기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남겨진 시설들은 바람과 함께 늙어갔다.
보가 열리고 쓸모를 다한 것들이 하나둘 정리되는 동안
20년이라는 시간은 이곳의 얼굴을 계속 바꾸어 놓았다.
매년 이맘때면 그녀의 가족들이 찾아온다.
처음엔 그녀가 찾아갔지만 이제는 가족들이 이곳으로 온다.
보지 못해 마음에 걸린다던 작은 딸의 결혼식,
늠름한 사위를 데리고 와 수줍게 웃던 날도 있었다.
그녀가 이곳으로 온 지 한 10년쯤 되었을 때였나?
그녀의 두 자녀가 모두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아서,
아홉 식구가 몰려와 강변을 운동장처럼 뛰어다녔다.
아이들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주는 그 경쾌하고 밝은 모습이 참 좋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맑은 물처럼 공기를 씻어주던 날.
큰딸은 아들 둘, 작은딸은 딸 둘.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놀이를 만들어 까르르 웃으면
그녀의 시간도 함께 웃었다.
해마다 아이들은 자라 하나둘 빠진 자리만 남았지만
그녀는 늘 그날을 기다렸다.
올해는 큰 딸네 작은 아들 하나만 따라왔다.
남편과 두 딸 내외, 단출한 식구들.
재잘거리며 뛰던 아이들이 모두 고등학생이 되었다는 말에
20년이라는 시간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작은 딸이 그녀에게 조용히 소원을 빈다.
“매년 엄마한테 부자 되게 해달라고 빌었는데,
처음으로 엄마에게 다른 소원 빌어요.
우리 큰딸 수능 잘 보게 해 주세요!
늘 내 소원 들어준 엄마니까 올해도 잘 부탁합니다.
올해는 특히 신경 좀 써줘~
이제 하늘생활 20년 짬바면 힘 좀 쓸 수 있을 거 같은데
외손녀 수능 대박 나게 힘 좀 써봐요~”
그녀는 웃는다.
하늘에서의 20년은
짬바라고 하기엔 아직도 어색한 시간이라서...
말없이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