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선에서

시점

by 밝둡

ㅂ은 고독의 등을 만졌다.

그러자

등의 반대편에 있는 고독의 심장자리에 맡겨둔 페인트통에서 풀색이 피어났다. ㅂ의 손톱은 어깨의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배꼽을 향해 금을 그었다. 그것의 안으로 풀색과 살은 뭉쳐져 흔한 모습의 뻔한 풀잎이 날카롭게 솟았다.


ㅂ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눈을 감았고 나는 들켰다.

난 이제 그곳을 벗어나 고양이 눈을 모두 적실만한 하나의 물방울이 되어 고독의 왼쪽 가슴에 핀 풀잎을 향해 퍼졌고 흡수했다.


ㅂ의 뒤를 향한 손을 고독이 손을 뻗어 잡았다. 고독은 이제 질질 끌려 걷기 시작한다. ㅂ의 다른 한 손이 길가에 떨어진 노래 한곡을 가리켰고, 고독은 입안에 처넣었다. 곧 나오는 좁은 길의 시작에서 ㅂ은 잠시 멈추었다. 고독이 ㅂ의 등을 만졌다. 뜨겁다.


ㅂ은 이제 어느 가야 할 곳으로 걸었다. 그동안 밤을 열네 번 지나쳤고, 네 명의 사람을 만나 세 번의 대화를 나누었다. 그중 한 사람은 이름을 말하지 않았고, 한 사람은 같이 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세 번째 사람과의 대화 이후 ㅂ은 지금 길에서 멈춰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사실에 대한 것 대신 꿈 얘기 하나를 해 주었는데 ㅂ은 조금이라도 길을 벗어나면 잊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멈춰있다. 꿈은 대략 이렇다.


"나는 어느 곳에서 누군가를 찾으러 헤매고 있어요. 어두운 거리예요. 며칠이 걸렸고, 어느 나무를 만났어요. 아마 그건 잠을 자고 나서 만난 것 같은데, 그 나뭇가지 끝에 내가 아는 사람들의 얼굴이 갇혀있는 열매들이 하나씩 달려 있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ㅂ은 꿈을 갖기 위해 읊었다. 흔들리는 길 앞에서 갈라지는 길 앞에서 한 발씩 걸으며 확인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꿈은 앞뒤가 엉키거나, 장소가 바뀌었다. ㅂ은 괴로워했다. 그 꿈은 길을 나설 때마다 한 칸씩 그렇게 설쳐대고 움직였다. ㅂ의 고통을 고독은 잘 알고 있었고 찡그리며 걱정했다. 바스러지는 꿈을 잡는 ㅂ의 시선의 주변에 흐려진 길이 웅크리고 있다.


ㅂ은 남아있는 꿈의 조각들을 고독에 묶었다. 그리고 각자의 방식으로 그것은 꿈틀거렸다.


ㅂ의 꿈에 대한 기억에 대한 태도는 어울리지 않는 간절함을 만들었다. 길 위에 녹아드는 얼음덩어리를 맞으며 ㅂ은 아직 길을 걷는다. 얼어붙는 꽃송이의 향에 취해서 비틀거리며 걷는다. 시간이 앞서 걸었고 꿈은 무겁다.


ㅂ은 지금 어느 마을에 도착했고, 걷는 것을 멈추었다. 요즘은 높은 곳, 그러니까 하늘이 마주 보는 풍경의 세워진 면에 기대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지낸다. 그렇게 옆으로 가로 새기며 움직이는 구름도 손끝으로 만져본다. 조그맣게 파닥거리는 새들의 하루도 따라가 본다. 가끔 등에 고독의 손길이 느껴지면, ㅂ은 잠을 잤다. 그러면 가슴에선 풀잎이 고개를 들고일어나 살색을 벗고 꿈의 냄새에 맞추어 걸었다. 어깨에서 배꼽으로의 그 사선에서 언젠가 들었던 꿈속의 꿈속의 나무 끝에 맺혔던 누군가의 얼굴의 열매가 씨앗을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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