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점-처음써보는 소설
봄바람이 살짝 차가운데도 서진의 마음은 가볍다. 그녀가 걷는 길 양쪽으로 노란 개나리가 화사하게 웃는다. 봄이되면 약속이나 한듯이 조용히 싹을 틔우고 노란손짓을 하는 꽃들을 보면 늘 신기하다. 코끝에는 묘하게 달콤한 향이 스며들고, 서서히 기분이 좋아진다.
서진이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딸의 학교에 도착해서 교실 문 앞에 선다. 교실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왜 서진은 교실문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숨 고르기를 했을까? 드르륵 문을 여는 소리가 잠시 서진을 그녀의 여고시절로 데리고 간다.
그녀가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지 사흘째되는 날이었다. 교실에서 보는 운동장은 이상하게 낯설었다.
"전학 왔대, 서울에서."
선생님 말이 끝나자 시선들이 갑자기 서진 쪽으로 몰려온다. 서진은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그동안 많은 시선을 받아도 담담했던 서진은 이날의 낯선 공기가 뚜렷이 기억난다.
쉬는 시간이 되자 몇 명의 아이들이 다가온다.
"너 진짜 했어? 이렇게 말해?"
"밥 먹었어? 도 그렇게 말해?"
낯선 땅의 이방인이 된 느낌이 이런 걸까?
서진은 늘 밝았다. 아니 밝아야 했다.
주변에서 선생님들이 말한다. "너는 상당히 적응을 잘하는구나... 빠른 시간 안에.."서진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너는 정말 적응을 잘하고 있니? 응 잘하고 있어.. 조금은 낯설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지 않아? 나 잘하고 있는 것 같아'서진은 스스로 묻고 대답한다. 그때 서진은 달팽이 껍데기 속에 자신을
가두었다. 맨들하고 단단해서 누구도
서진의 심장을 들여다볼 수 없으니까.. 그 안에서 나가면 스스로 무너질 것 같았으니까..
서진의 더듬이는 어디를 항하고 있는 걸까?
달팽이 껍데기는 그 답을 아는가?
촉촉한 바닥을 걷고 싶었지만 메마른
거친 땅 위로 홀로 걷고 있다.
"너 진짜 서울말 쓰네 진짜 신기하노
니 한번 제대로 말해봐라 나도
배우고 싶다 아이가..."
사춘기 소녀에게 쓰나미 같은 관심이 쏟아진다. 자꾸 서울말을 써보라고 한다.
친구가 어설프게 서울말을 따라 하고
까르르 웃는다. 서진도 같이 따라 웃는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웃지 않으면
서진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조금은 그려졌다.
서진은 그런 가짜 달팽이의 모습으로 꽤 오랜 시간 살았다.
아니 버텨야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친구들과 밥을 먹는다. 눈동자는 계속 움직이고 무슨 말을 할까 생각을 한다.
배가 고프니 밥을 먹지만 무슨 맛인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외로움은 유리와도 같아서 투명하지만
차갑게 서진을 가로막고 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까?
서진은 초록빛과 회색이 섞인 공기에서 그녀와 다른 말투를 쓰는 좋은 친구들과 그렇게 밥을 먹는다. 마치 뜨거운 딤섬을 입안 가득 물고 삼키지 못하듯 그 어색한 공기 속에서 미소 지었다. 그녀는 속으로 다짐한다. '괜찮아질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현장 체험학습날이 되어
예쁘장한 친구가 서진에게 묻는다.
"우리 같이 갈까? 사진도 함께 찍고, 내가
카메라 가져갈게..". 방긋 웃으며 서진에게
손을 내밀어준 민지.. 그녀는 서진처럼 안경을 쓰고 웃는 모습이 예쁜 친구였다. 역시
부산에는 마음이 따뜻한 미인이 많구나..
'왜 이제야
나타난 거니? 민지야...'
서진은 속으로 생각하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끝이 없을 것 같던 깊은 터널을 빠져나오는 느낌이다.
고요의 시간들이 지나고 서진은 좋은 친구와 무척이나 친해진다. 함께 축제를 보러 가고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는 소중한 친구... 비슷한 불안과 기쁨을 공유하는 진정한 친구... 서진은 그동안
애써 웃으며 견딘시간들이 다 헛된 시간이
아닌 걸 안다.
때로는 홀로 질문하고 답했던 서진의 시간들
수많은 0과 1 사이에서 흔들렸던 그녀의
시간들...
지금 서진은 교무실 문 앞에 서 있다.
서류를 받으러 왔고 서진의 딸은 교실 어딘가에 있다.
이제는 딸의 뒷모습에서 서진의 시간들이 겹쳐 보인다. 서진은 딸을 생각하며 속으로 말한다.
인생에서 지금의 시간들이 찬란하게
기억되길..
가장 아름답고 고마운 인연들로
가장 역동적인 지금의 시간들을 무지갯빛
계절로 채워나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