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명사를 기억해 내련다

문체

by 열목어

머릿속이 간질간질하달까.

나는 지금 그런 상태다.

모양과 맛이 선명히 떠오른다.

여름도 아닌 겨울의 한 중간에 왜 난데없이 어떤 아이스크림이 떠올랐을까.

나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구멍가게의 친구들.

이제는 시장에서 완전히 자리 잡은 빙과류라고 말해야 옳겠다.

그 든든한 벗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나의 오래고 정다운 너.

더운 계절에 이 아이스크림을 만나는 것은 나에겐 즐거움이다.

동네슈퍼들이 거의 문을 닫고 그 남은 것들 조차도 모두 프랜차이즈 편의점 간판을 달았다.

목재 창틀의 미닫이 유리문이 깔끔한 양쪽 여닫이 통유리문으로 바뀌고 나무 좌판들이 삼열 종대의 깔끔한 입식 거치대로 변했다.

이 동안에도 이들은 의연하게 살아남아 아직도 반짝반짝 포장을 빛내고 있다.

이들은 거친 세월을 뚫고 '구관이 명관'이라는 류의 감흥을 내게 전해준다.

어제의 과음에 가끔씩 속이 메슥이고 답답증이 올라올 때 이것은 떠오른다.

찬물도 탄산음료도 달래주지 못하는 가늘고 질긴 그 갈증을 잠재워줄 너.

그런데 너의 이름을 내 어찌 잊었는가.


겉에는 밤색 크리스피 초콜릿이 씌워져 있다.

도둑이 제일 싫어한다는 누가바.

깨물면 그 안은 약간 노르스름한 연유맛 속살이 채워져 있었지.

날씨가 무더워 빨리 녹기 시작하면 그 밤색 크리스피가 녹아내려 연유와 함께 손가락에 묻을세라 얼른얼른 먹어치우던 기억.

반짝반짝 유리처럼 얼음이 박혀있던 보석바.

밤맛의 표면 안쪽에는 꿀이 흘러나오던 바밤바.

수박을 삼각형으로 잘라놓은 듯, 초콜릿 씨앗도 박혀있던 수박바.

주머니에 돈이 얼마 없을 때 차선으로 선택했지만 언제나 오래 먹는 기쁨을 주던 비비빅.

끝을 똑 따서 손으로 눌러가면서 입에 물고 쭉쭉 빨아먹던,

그 아이스크림을 싸고 있던 그 비닐의 맛까지도 기억나는 쭈주바.

짙은 보라색의 외피 안에 빨간 얼음이 차있던 상어모양 죠스바.

요상하게 꼬여서 깨물기보다는 살살 돌려가면서 그 나사선을 없애는 즐거움으로 먹던 겉은 빨갛고 속은 희던 스크류바.

죠스바와 스크류바는 먹고 나면 입술과 혀의 색깔을 바꿔주던 재미가 있었지.

히히 하하 웃으면 동무의 입술과 이와 혀의 색깔로 나도 지금 꼭 저렇겠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너를 뺀 거의 모든 아이스크림의 이름들이 이렇게 명쾌하게 떠오르는데 왜 너의 이름은 잡힐 듯 잡힐 듯이 떠오르지 않느냐.


당부드린다.

나에게 이 친구의 이름을 알려주지 마시라.

왜냐하면 건강염려증의 상층부에 위치한 건망증과 치매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다.

꼭 나의 지력으로 이 이름을 생각해 내야만 나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일부 해소될 듯하다.

또 이렇게 생각하는 과정이 내 기억력의 쇠퇴를 지연시켜 줄 거라 믿고 싶기도 하다.

자, 이 친구는 이렇게 생겼다.

한 마디로 말하면 쭈쭈바의 한 종류인데 색깔은 짙은 갈색을 넘어 고동색에 가깝다.

달콤함 속에 코코아의 진한 맛이 느껴진다.

여타의 다른 종류의 쭈쭈바로 통칭되는 것들이 거의 그렇지만 슬러시의 상태가 되었을 때 그 시원함의 진수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이것이 다른 종류와 구별되는 점이 있다.

그 코코아맛 또는 초콜릿의 성분 때문인지 몰라도 슬러시 상태에서 조금 더 입에 감기는 감칠맛에 약간의 점성이 더해있다는 것이다.

비닐에 담긴 내용물을 싸고 있는 겉 포장에는 예의 그 둘리 그림을 그린 김수정만화가의 그림체 같은 우스꽝스러운 선사시대 사람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 겉 포장의 색깔은 대체로 흰색과 파란색이 조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이었던가.

등산의 초입에서 머릿속을 떠돌던 할리우드 영화 장면 하나가 나에게 착 감겨왔다.

'아...... 기가 막힌 영화였지.'

명장면의 슬라이드가 내 눈앞에 돌아가고 있는 듯했다.

주인공의 표정이 선명하다.

그런데 그 유명한 영화의 주인공 이름이 잡힐 듯 잡힐 듯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이는 생각이 안 나서는 안 되는 이름이었다.

마치 그 가수가 누구더라...... 누구더라 이렇게 저렇게 퍼즐을 맞추다가 끝내 맞추어낸 이름이 마이클잭슨이었을 때 느낄 정도의 당황.

산에 오르는 내내 그 이름을 생각해 내느라 주변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와 다르게 걸음걸음이 답답했다.

그 추리의 과정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잘 감긴 스카치테이프의 시작점을 찾으려 손톱으로 긁어보지만 그 끝을 벗겨 일으키려는 감각이 손톱 끝에 걸리지 않는 그런 느낌이랄까.

정상에 거의 다 올라와서야 간신히 그 이름을 생각해 내었다.

순간 무척 기뻤다.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고 그 후에 밀려오는 자괴감.

아니 어떻게 이 배우의 이름이 바로 떠오르지 않을 수 있지......


마찬가지로 이 아이스크림 이름, 지금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 상태다.

머릿속에 아주아주 조그만 벌레가 돌아다니는 것 같다.

간질간질한 것이...... 긁고 싶으나 두개골 바로 아래 있어서 그럴 수도 없다.

산소가 희박한 지대에서 있는 것처럼 숨을 쉬어도 가슴이 시원하지 않다.

현재 내 답답함과 자괴감은 지난번 간신히 생각해 냈던 그 배우의 이름을 들으면 조금 이해하실 수 있겠다.

그 배우의 이름이 무려 브래드피트였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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