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맛보기

by 미르

글쓰기 수업 교실에 들어가서

오늘의 수업 내용 프린트를 받았습니다.

'자서전 맛보기'.

쉽지 않은 주제이군요.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야 하는 시간이네요.


글쓰기의 처음은 재료를 찾는 것.

콘텐츠가 중요하다.

나의 주변에서 찾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차 확장되어 갑니다.


나를 먼저 알아봅니다.

선생님이 칠판에

가로로 긴 줄 세로 짧은 줄을 긋습니다.


가로 줄은 나이.

세로 줄은 자신의 감정의 정도.


나이는 10년, 20년 이렇게 적어도 좋고

25세, 37세, 49세 등

자신의 삶의 인상적인 시기를

표시해도 좋습니다.


그때 자신의 감정을

위쪽 1,2,3의 강도로 좋았는지

아래쪽 -1, -2, -3인지

감정의 강도를 표시합니다.

인상적인 지점에 점을 찍어 표시하고

간단한 키워드를 옆에 적습니다.


이렇게 찍은 점들 중에

3개를 골라 발표를 합니다.


취업, 결혼, 출산,

자식의 취업, 부모님의 죽음 등

굵직굵직한 단어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 단어들 중 하나를 골라

짧은 글을 써 봅니다.


결정적인 순간을 잡아 봅니다.


개인 사업을 하느라

하루에 몇 시간 밖에 자지 못하고

배달, 야식으로 끼니를 때우던 분이

건강검진을 하러 간 순간.

(딱 그 순간에 글을 끊었습니다.

사람들 궁금하게 해놓고.)


3명의 오빠가 치고받는 것을 보며 자라서

꼭 딸이 낳고 싶었는데

3명의 딸을 차례로 낳아서

너무 좋았던 순간.

(남편이 장남이고

시어머니가 아쉬워하는 것이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함.)


전역하고 나서 10여 년이 지난 뒤

서점에서 우연히

오토바이 하나로

세계 여행을 한 여행책을 봤는데

그 작가가 눈에 익은 군대 동기라서

출판사를 통해 군대 동기 만난 이야기.


7살 유치원 졸업식 날,

일하느라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아버지가 유치원으로 편지를 보내서

많은 졸업생 앞에서

아빠 편지의 낭독을 듣고

기쁘기도 부끄럽기도 한 이야기.


중학교 때 만난 친구와

고등학교, 대학교 때까지

아주 친하게 지내다

60이 넘어 최근에 절교한 이야기.

(은중과 상연의 1회를 들은 것 같음.)


그리고 부모님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통과의례를 치른 사람들.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그날의 기억들은 가슴속에 계속 남아 있어

사소한 일까지 아직 그대로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날의 기억들.

눈물들.


여기저기서 티슈가 날아다니는 속에서

발표가 끝났습니다.


저의 삶의 순간들 중

그리 특별하지는 않지만

1이나 2의 강도로

반짝였던 날을 소개합니다.



20년 전쯤 한낮의 더위가 아직 남아 있는 초가을.

남편과 유치원생인 딸이랑 갑작스러운 여행을 떠났다. 부산에서 전주까지. 어쩌면 부산에서 서울까지보다 가기 힘든 코스이다. 휴게소에 몇 번이나 들렀다. 쉬엄쉬엄 느릿느릿 올라갔다.

숙소 예약을 하지 않았다. 전주의 관광지 근처의 모텔이 모인 곳의 한 곳에 즉흥적으로 숙소를 정했다.

전주 막걸리가 유명하단다. 막걸리 골목을 찾아 검은콩 막걸리 한 주전자를 주문했을 뿐인데 환상 같은 한상을 받았다. 셋이서 먹고 또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마법의 음식처럼 다양한 음식들이 나오고 또 나왔다.

다음날 아침, 외국 냄새가 물씬 나는 전동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왕의 초상화가 있다는 경기전의 노란 마당을 살금살금 걸어 다녔다. 한옥 마을의 작은 가게들이 늘어선 길을 두리번거리며 탐험했다.

걸어 다니다 보니 어떤 가게 앞에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었다. 무슨 초코파이를 사는 줄이란다. 느긋하고 여유로웠던 우리도 줄에 합류했다. 한 시간가량을 시시덕거리며 서 있었다. 전쟁을 치르는 것 같은 가게 안에서 드디어 초코파이를 한 상자 샀다. 우리가 아는 대기업 초코파이보다는 빵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한낮의 더위와 저녁의 서늘함이 공존하는 요즘 날씨.

긴팔 티셔츠와 반바지가 거리에 보일 때쯤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녔던 전주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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