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에서 연한 갈색의 부드러운 깃털을 가진, 오리보다는 덩치가 큰 새를 보았다.
바로 휴대폰을 꺼내 앞, 옆, 뒤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어 대는 데도 새는 아랑곳하지 않고 풀 속으로 고개를 들이밀며 무언가를 쩝쩝거리며 열심히 먹고 있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청둥오리네."
"암컷이야."
"아직 덜 자랐어. 털 봐. 아기네."
아하, 아기 암컷 청둥오리구나.
화려한 청둥오리는 수컷이고 이 연한 갈색의 수수한 청둥오리가 암컷이구나. 보송보송한 털로 보아 아직 완전히 자란 것은 아니다. 주위에 엄마 청둥오리나 형제자매가 있나 살펴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이제 막 독립을 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청둥오리일지도 모르겠다.
막 어른이 되다.
흔들리고 있는 시기이지만 그 자체로 얼마나 아름다운 시기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 헬스장에서 아침마다 마주치는 학생 같은 젊은 아가씨가 있었다.
운동을 하러 오니 편한 옷차림이 맞긴 하지만 몸집보다 두 사이즈나 커 보이는 옷을 입고 머리는 묶지도 않고 사자머리를 하고 두꺼운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와서 얌전히 운동만 하고 갔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원래 예쁜 여배우가 일부러 못생기게 분장을 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갑자기 어떤 계기로 머리하고 화장해서 몰라보게 아름다워지기 직전 딱 그 비포 버전으로 다니고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모르고 다니고 있었다. 날씬한 몸매도 다 가리고 그 예쁜 눈도 두꺼운 안경으로 막고 있었다.
아,안타까워라.
내 동생이라면 당장 끌고 가서 머리하고 안경을 벗겨 주고 싶었다.
자신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기인지 말해 주고 싶었다.
아름다운 시기를 즐겨라.
얼마 전 예전 학원 강사로 다닐 때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을 우연히 길에서 만났다. 일 년에 한두 번 만나는 모임의 일원이다. 인형 같은 외모와 그렇지 않은 파격적인 말솜씨를 가진 닮고 싶은 선배언니.
계절이 여름과 가을이 뒤섞일 때쯤 그 선생님은 반바지와 부츠를 멋지게 코디하고 학원에 왔었다. 당시로는 좀 파격적인 옷차림이라 입을 벌리고 감탄을 하며 쳐다보고 있는 선생님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자기들, 내가 자기들 나이였으면 홀딱 벗고 다녔어! 좀 벗고 다녀!"
아, 언니의 나이는 나보다 딱 세 살 많은 스물일곱.
언니도 어리고 나도 어렸다.
학원 선생 초기에는 나이가 어리다는 것이 어쩐지 부끄러웠다. 경험이 없고 자신도 없어서 원숙미로 밀고 가고 싶었다. 옷도 딱딱하고 재미없게 입고 다녔다. 홀딱 벗는 것은 좀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시기에 좀 헐벗고 다녀야 했다.
선배 언니와 오랜만에 만나서 신나게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들과의 모임에서 공교롭게도 내가 막내를 맡고 있다. 막내라고 해서 어려운 일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총무도 아니다.
우리 모임에는 수학 선생님이 있다. 어지간한 계산쯤은 머릿속으로 해내며 회비를 내라 하면 내면 되고 통 큰 언니가 한턱낸다고 내지 마라고 하면 감사해하는 아주 편한 자리이다.
나는 주로 모임에서 감탄과 손뼉 치기를 담당했다. 오랜만에 만난 것이 반가워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데 선배언니가 이야기한다.
"자기,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닌데 안 본 사이에 많이 달라졌어."
모임에서 언니들 말을 들으며 감탄하며 박수만 쳐왔던 내가 이제는 좀 자란 어른이 된 것 같다.
그 아름다운 시기에 어른이 되지 못하고 뒤늦은 감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이 참 좋다.
아기 청둥오리는 그 뒤 그 장소에서 몇 번 더 발견되었다.
여전히 혼자이고 보송보송한 엉덩이 깃털을 내밀며 뒤뚱뒤뚱 열심히 다녔다.
아직까지도 그곳에서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듯했다.
한 번은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어디에 숨겨 두었나 싶을 정도로 몸집보다 훨씬 큰 날개였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온통 갈색이던 몸통과 달리 활짝 편 날개는 검은색이었다. 아래의 사진에 몸통 옆에 보이는 숨겨진 조그만 검은색이 바로 날개였다.
언뜻 보면 잘 보이지 않는 날개를 숨겨 두고 있었다.
앞으로 나아갈 날을 위해 숨겨둔 날개!
많이 먹고 어서 커서 숨겨둔 날개를 활짝 펴고 훨훨 날아가서 아름다운 인생을 즐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