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남편과 가까운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다.
식당이 있는 건물의 복도 1층을 걸어가다가 요란스러운 몸짓의 개구쟁이 남자아이와 아빠를 보았다. 아이는 꼬리가 달렸다면 신나게 프로펠러를 돌릴 것 같은 활발한 몸놀림으로 아빠 주위를 날 듯이 돌고 있었다.
아이의 아빠는 쭈그리고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짙은 회색의 카펫과 대비되어 형광펜의 연두빛깔만큼이나 선명한 사마귀였다.
사마귀.
산책길도 아니고 일반 건물의 복도에 떨어진 사마귀라니!
어떤 연유인지 이곳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사마귀임에 틀림없었다.
낯선 곳에 떨어진 것을 항의라도 하는지 혹은 오가는 많은 사람들이 무서운지 허리를 곧추세워 덩치를 커 보이게 하고 무술 영화에서 보던 당랑권 포즈로 서 있었다.
아이만큼이나 개구쟁이인 듯한 표정을 가진 아이 아빠는 사마귀에게 계속 손가락을 들이밀며 아들에게 사마귀가 당랑권 포즈로 있는 것에 대해 아이에게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자세한 설명을 해 준다.
옆에서 휴대폰 카메라를 켜고 앞쪽, 뒤쪽, 옆쪽 사진을 요란스럽게 찍어 대는 나를 아이의 아빠는 조용히 기다려 주더니 엄지와 검지로 사마귀의 몸통을 꽉 잡더니 건물 밖으로 나가 길가의 풀 위에 놓아주었다. 꼬리가 있다면 기분 좋다고 살랑살랑 흔들 것 같은 아이의 손을 잡고 아무 일 없는 듯이 길을 걸어갔다.
휙 다가온 두 손가락에 놀라 버둥대던 사마귀는 풀 위에서 안정을 찾고 편안하게 허리를 내린다.
갑자기 떨어진 낯선 세계.
두 손가락.
예전 학창 시절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열심히 읽었다. 개미의 입장에서 제일 경계해야 할 것이 '다섯 개의 붉은 공'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다섯 개의 붉은 공이 나타나고 개미들의 일상을 흔드는 많은 심각한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다.
다섯 개의 붉은 공은 인간의 손가락이다.
지표면에 바짝 붙어 다니는 개미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너무나도 거대하기에 보이지 않고 자신들을 위협하는 다섯 개의 손가락 끝만 보인다. 그래서 항상 무리 지어 다니는 다섯 개의 붉은 공이다.
사마귀의 입장에서 인간은 어떻게 보였을까?
개미처럼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보였을까 아니면 개미보다는 덩치가 훨씬 크니 다섯 개의 기둥처럼 보였을까?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런데 사마귀를 만지는 아이의 아빠는 참 용감하다.
어릴 적 살던 곳에서는 사마귀를 만지면 사마귀가 생긴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나는 감히 사마귀를 만질 생각이 손끝도 없다.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즈음 새끼손가락에 사마귀가 생겼다.
학교 끝나고 놀이터에서 하루를 보내는 자연 친화적인 생활을 하던 때라 밖에서 사마귀를 만졌는지 안 만졌는지 알 수 없다.
지금은 집에서 콩알만 한 벌레 한 마리라도 보면 호들갑을 떨며 무서워하는 척해서 엄마에게 벌레 처리를 맡기는 아이이지만 어릴 때 밖에서 개미, 잠자리, 무당벌레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덥석덥석 만졌던 아이이니 사마귀도 만졌을 수도 있다.
여리고 부드러운 손가락에 까칠까칠하고 거친 사마귀가 조금씩 커질 때쯤 동네 피부과를 찾았다.
액화 질소를 사용해서 사마귀를 급속냉동시켜 사마귀를 떼어 내는 치료를 한다. 굉장히 위험하지만 안전해 보이는 통이 들어오고 선생님께서 섬세하게 사마귀 부위에 액화질소를 가져다 대었다.
치료를 마치고 나서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니 몇 번 더 와야 된다고 다음에 올 날짜를 지정해 주었다.
치료를 하고 난 사마귀 부위가 아팠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의 사마귀가 아니니 더욱 아팠는지 아닌지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딱지가 앉고 그 딱지가 떨어졌다. 딱지가 떨어지고 나자 놀랄 정도로 예전과 똑같은 맨질맨질 부드러운 피부로 돌아왔다.
의사 선생님이 다시 오라고 한 날짜가 다가왔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멀쩡한 손가락이지만 나는 '의사'라는 직함이 주는 권위에 아주 약한 인간이다. 의사 선생님이 오라고 하면 오고 가라고 하면 간다.
그래서 병원에 갔다.
진료실에 들어가서 의사 선생님께 말했다.
"선생님, 제가 보기에는 아주 멀쩡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아이 손가락을 살피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하하하! 제가 봐도 멀쩡합니다! 치료 안 해도 되겠습니다!"
가끔씩 이런 경우도 있다고 한다.
선생님이 그냥 가라고 해서 인사를 하고 병원비도 안 내고 그대로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사마귀 치료는 끝이 났다.
그리고 그 뒤 사마귀는 다시는 나지 않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다.
사마귀에 대한 아픈 추억이 있는 사람을 배려해서 사진을 제일 아래에 놓았다.
사진을 보다 알게 되었는데 사진을 막 찍고 있는 나를 쳐다보는 사마귀의 점을 찍은 듯한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앞다리 두 개를 얼굴 옆에 붙인 모습이 뭉크의 유명한 그림 절규를 닮은 듯하기도 하다. 왜 내가 갑자기 이 낯선 곳에 떨어진 것인지 항의하고 절규를 내뱉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따지자면 짙은 초록색의 어른이 아니라 연한 연두색을 가진 아기 사마귀인 듯하다.
자아, 심호흡 한 번하고 사진이다!
하나,
둘,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