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름? 너의 이름!

자신의 이름 지키기

by 미르

이 글을 쓸까 말까 고민했다.

나에게는 상처였던 글,

하지만 이 글로 다른 이를 비난하게 될 수도 있는 글.

더군다나 대상은 학생.

이런 글은 고민스럽다.


하지만 이런 일도 있었다.

아마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를 일.

그냥 쓰기로 한다.


자신들이 진로가 거의 결정되어서

수업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


허리에 풍선을 매달고 둥둥 떠다니는 학생들을

지상으로 내려 수업을 한다.


한 학생이 있었다.

첫 시간부터 눈에 많이 뜨이는 학생.

이름을 물었다.

'제이콥'이라고 한다.


그 뒤로 내 입에서는 '제이콥'이 자주 등장했다.


"제이콥, 앉으세요."

"제이콥, 3번 문제 읽어 보자."

"제이콥, 문장 읽고 해석합시다."


내가 '제이콥'이름을 말할 때마다

잔잔한 웃음 같은 것이 반에 물결처럼 번져갔을까?


초보 선생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워낙 정신없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반이니

그러려니 했다.

유독 힘든 반이었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교무실에서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반의 듬직해 보이는 학생 한 명이

다른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고

어쩌다 나의 자리에도 왔다.

그리고 하는 말,


"선생님,

선생님이 '제이콥'라고 부르는 애가

실은 '제이콥'아니라 '노네임'이에요."


'제이콥'이 '제이콥'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상황?

어리둥절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옆자리의 선생님이 듣고 혀를 찼다.

"쯧쯧, 아직도 그런 장난을 치냐?

둘이 친하니 다행이다."


더욱더 놀라운 이야기를 해준다.

예전 학교에서

한 학생이 나쁜 짓을 하다가

선생님에게 들키고는 자신의 이름대신

자기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만만한 학생이름을 댄 것.

영문을 모르고

다른 학생의 잘못을 뒤집어쓴 학생.


이런 일이 간혹 있단다.

이런 일도 있다.

지금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철 모르는 학생들의 장난이라 치부할 수도 있다.

다른 이의 이름을 빌려

곤경에서 가볍게 벗어나기.

한 번도 생각지 못한 일인데

가끔씩 벌어지는 상황.


친구 이름을 댄 학생도 놀랍지만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학생도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자신의 이름을 한 달이나 넘게 빌려 주다니

그것도 좋은 일이 아닌 것인데.


나의 입에서 나온 '제이콥'이

결코 우호적이거나 친근함에서 나온

'제이콥'이 아니었다.


수업에 집중시키기 위한 경고를 담은

전략적인 호명.


자신의 이름이 이런 식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다행이라고 할 수도 있는 점은

둘의 관계가 일방적이지는 않아 보였다.

(그런데 그것을 다행이라 할 수 있을까?)


일방적으로 괴롭히고

이름을 뺏은 상황은 아닌 듯했다.


이름을 빌려 준(?) 진짜 '제이콥'은

키가 거의 180cm에 달하는 건장한 덩치의

유쾌한 학생이다.

결코 괴롭힘을 당할 아이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오히려 둘은 친구였다.

친한 친구 사이.

쉬는 시간 같이 몰려다니는 친한 친구.

친한 친구이기에 그런 불편한 상황을

참을 수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중학생들의 장난이란

한없이 가볍고 가벼워서 깃털만큼의 무게도

지니지 않는 것일까?


초보 선생에게는 묵직한 상처가 되었다.

이름을 뺏은 학생도

이름을 뺏기고 말하지 못한 학생도

그들을 웃음거리로 보고 지나친 학생들도.


이름을 뺏긴 학생 '제이콥'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너의 이름을 소중히 여겨.

부모님이 만들어 준 그 이름을

아무렇게나 불리게 만들지 마.

싫으면 싫다고 말해.

안되면 어른들에게 말해도 돼."


'노네임'에게는 할 말이 없었다.

나에게 그 학생은 '노네임'이었다.

그냥 '학생'이었다.


그 뒤 하늘로 둥둥 떠 다니던 학생들은

조금은 차분해지고

그렇게 2학기의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제이콥 : 대신하는 자, 대체자.

노네임 : No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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