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 예술가에게

by 미르

복도마다 졸업생들의 그림이 걸려 있어

한 시간쯤 시간을 찬찬히 들여서

걸어가고 싶은 복도.


가야금이 케이스에 넣어져

장승처럼 두어 개가 뒤쪽에 딱 수호신처럼

서 있는 교실.


수업이 끝날 때쯤

이미 다른 곳에서 레슨을 마치고

등에는 자신의 몸피보다도 훨씬 큰

첼로 케이스를 메고 살며시 들어오는 여학생.


손가락이 20개쯤은 필요해 보이는

현란한 음표를 섬세한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그리고 있는

180cm는 넘어가는 장대한 덩치의 남학생.


수업 도중 느닷없는 오토바이 헬멧맨의 등장,

알고 보니 지갑 안 가져왔다고

엄마에게 퀵 서비스를 부탁한 여학생.


친구들에게 들은 말이 상처가 되어서

도저히 수업을 못하겠는데

점심은 먹고 집에 가겠다는 남학생.


매주 섬세하고 다재다능한 아이돌들을

만나는 기분으로 출근을 했다.


겨울 방학이 끝나고

봄 방학이 시작되기 전의

짧은 어중간한 수업 시간.


마지막 수업 시간이니

A4 롤링페이퍼에

3학년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고등학교의 생활을 응원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 서로에게 보낸다.


자신이 원하는 예술고등학교에

합격을 한 학생들,

예상치 못한 탈락에 일반 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 된 학생들.


'불합격'이라는 글자를 만난 학생들이

마음에 걸렸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만나게 될 상황들 중의 하나이지만

아직 어린 학생들에게는 잔인한 말.

상처가 될 수 있는 단어.


그래서 뭐라 말하기가 더 조심스러웠다.

앞으로 잘할 수 있을 거야.

잘될 거야.

이런 뻔한 말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미처 다하지 못한 말.


예비 예술가 여러분,

앞으로 몇 년 후면 여러분들은

당당한 예술인이라는 이름표를 달게 될 거예요.


비록 지금은 자신이 생각한 길에서

약간 벗어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많은 친구들과 다른 길이라

외롭고 낯선 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기나긴 자신의 길을 생각해 보면

약간 다른 길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조금은 느릴 수도 있지만

그래서 다른 것들을 더 많이 보고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이 될 거예요.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차곡차곡

여러분의 마음속에 쌓여

소중한 자산이 될 거예요.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지금 여러분이 해온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쭉 하기를

바래요.


지금 여러분들이 하고 있는 예술이

자신들이

좋아서

재미있어서

잘할 수 있어서 하는 거잖아요.


아직 이렇게 어린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알게 되는 것만 해도

참 대단한 일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교를 졸업하고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많이 헤매고 있어요.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은 지금 그걸 알고 있어요.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명확한 출발선을

가지고 있는 셈이에요.


비록 그 길이 다른 길보다

더 좁고 험하고 거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혹은 그 길을 가다가

진로가 바뀔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 바탕에는 여러분이 오랜 시간 걸어온

예술의 힘이 있을 거예요.

그 힘으로 여러분은 잘해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림, 무용, 악기, 작곡 등.

여러분이 3년 동안 공부해 왔고

앞으로도 쭉 해나갈 것들.

여러분이 사랑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

힘을 내서 걸어가 봅시다.

예비 예술가 여러분들을 응원해요.


그리고 여러분들은

세계로 뻗어나갈 글로벌한 인재인 걸 알죠?

글로벌하니 영어 공부 꼭 해야겠죠?

멋지게 영어로 자신의 서명 남기기.

여러분은 예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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