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지원서를

방과 후 강사

by 미르

겨울의 세찬 바람이 그치고

푸릇푸릇한 봄기운이 불어오면

지원서를 내야지.


집과의 거리, 수업 시간 기타 등등을

따져 보며

일하고 싶은 중학교 방과 후 강사 일자리에

지원서를 냈다.


경력에는 작년의 기초지원 강사 경력을

자랑스럽게 적는다.

작년 나의 업적이다.


한 학기 동안 둥실둥실 날아다니던

30명의 학생들을 어찌어찌 데리고

아등바등 진행한 수업의

뿌듯한 결과물이

이력서의 가치 있는 한 줄로 변신했다.

나에게는 소중한 한 줄.


며칠이나 지났을까

여행 중 걸려온 전화 한 통.

051로 시작되는 부산 전화.

02이면 스팸전화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하고

051의 지역번호도 만만치가 않은데.


휴대폰에 찍힌 051로 시작되는 번호가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는 받아 보면 좋을 텐데?'라며

새침한 기운을 마구 뿜어낸다.


아, 부산의 중학교다.

내가 지원한 학교.

아직 서류 합격 발표 날짜가

하루 더 남았는데 미리 전화가 왔다.

이런 기쁜 일이.


짧고 바빴던 여행을 끝내고

부산으로 와서 면접을 보러 간다.


처음으로 가는 길이니

시간을 넉넉히 잡고 출발.


네이버 지도상으로는 가까운데

버스에서 내려서 한참을 걷는다.

아까 확인했을 때는 이렇게 멀지 않았는데.


(합격하고 나서

나중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을 때 알았다.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의

국적이 모호한 외국 느낌의 아파트 이름은

잘 외웠다.


그런데 114동 앞에서 내려라고 하는데

104동 앞에서 내려 버렸다.

버스 한 정류장 앞에서 내린 것.


한 아파트의 114동이나 104동이나

그 차이가 얼마가 되려나 싶지만

엄연히 버스 정류장이 다를 정도로

꽤 거리가 있다.


숫자에 좀 약한 편.

숫자를 보고 흘려버렸다.

수학선생님이 아니길 다행이다.


한번 들으면

숫자가 머리에 저장되는 사람이 부럽다.

앞으로 숫자를 잘 보고 버스에서 내려야겠다.)


설상가상으로

네이버 길 따라가기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아니, 이럴 수가.

가끔씩 오른쪽 왼쪽 방향 잡기가 힘들다.


몸에 나침반을 가지고 있는 듯한 사람들도

보면 참 부럽다.

어떻게 동서남북을 몸에 넣어 다니지 싶다.

대단한 방향 감각이다.

다들 전생에 꿀벌 출신들인가?


방향을 돌려 다시 반대로 간다.

그러다 사거리에서 방향을 잃어버렸다.


이런.

네이버 지도를

아무리 이리 돌리고 저리 돌려 봐도

당황한 눈에는 길이 보이지가 않는다.


현지인처럼 보이는

지나가던 여자분 그리고 남자분들께 각각

길을 물어보지만

다 모른단다.


이를 어쩌나.

시간이 째깍째깍 흘러간다.


눈앞, 신호에 딱 걸려 대기하고 있는

오토바이를 탄 배달맨이 보인다.

급하니 휴대폰을 들고 가서 길을 물어본다.


그러자, 아, 이 분이 글쎄

그 무거운 오토바이를 차선에서 끌고 나와

인도 쪽으로 올려놓고

배달맨의 오토바이에 장착되어 있는

휴대폰으로 길을 본격적으로

찾아 주려고 한다.


아, 이렇게 고마울 데가.

감사의 인사를 하고

배달맨이 가르쳐 준 길로 올라간다.


평지가 아니라 약간 오르막.

뒤쪽의 산이 얼핏 보이는 오르막길.


(생각해 보면 주로 산 쪽에 학교가 있다.

부산(釜山). 가마솥 모양의 산의 도시.

산이 많다.

그래서 나도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다 산이 빠지면 섭섭한 곳이었다.

나의 다리의 튼튼함이 10년을 넘게

오르락 내린 훈련의 결과일 수도 있다.)


시간이 아직 남긴 했지만

급한 마음에 그 오르막을 달리기 시작한다.


수업을 이미 마친 근처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내려오고 있다.

중학교는 바로 옆에 있으니

학생들의 물결을 거슬러 막 달린다.


10분 전에 도착했다.

이제는 또다시 면접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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