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달에 쓰다
자상의 흉터가 아물어가듯 천천히 홀쭉해져 가던 달을 쳐다보고 몇일 째 예감은 했습니다만, 막상 그믐이 되고 나서도 나는, 이미 새살 돋은 쪽의 상처를 눈꺼풀로 핥습니다. 그믈어버린 곳의 언저리는 눈을 감아도 떠도 똑같이 어두워, 깜짝 놀란 나는 꼬리뼈 쪽에서부터 몸을 떨었습니다. 게다가 시인인 당신이 결국 곡기를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마음은 그믐날 썰물의 뻘밭처럼 치욕으로 무섭게 고요해졌습니다.
오죽 시를 쓰는 일이 부끄러운 날들이었길래 시인인 당신이 시를 쓰다말고 제 몸뚱이를 연소해 할 말이 있다는 겁니까. 그러니까 당신은, "싹 다 정리하고, 쓸어버리고, 끌어내라"는 핏대 세운 말들이 전염병처럼 도졌던 그 날부터 궤변과 위선의 말들이 드잡이의 추임새처럼 되어버린 지금까지 단 한 편의 시도 쓸 수 없었다는 거지요? 희망하다가 목이 쉬어버려, '절규'라는 단어 한 개 써 놓고선 금새 구깃구깃한 울음만 목메였다는 거지요?
부탁합니다만, 당신의 치명상을 계속 써 주세요. 언 땅에서 끌어 당겨 이제 막 수액 오른 나무들을 게걸스럽게 집어 삼키고, 도시로 번져가는 저 야만의 언어들을 당신이 아니면 대체 누가 무장해제 시킨단 말입니까. 참람한 말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들의 말이 되어가고 있는, 그 말로 지은 세상에 잠겨가는 사람들의 영혼의 난독증은 또 어쩌구요.
검사나 판사가 되고 싶은 아이들의 숫자가 시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의 숫자를 압도했던 시간이 너무 길었습니다. 그 와중에 시대가 그믈어 가던 것을 모르고서 아이들을 보채 한사코 검사와 판사로 길러낸 우리의 시간이 결국은 당신을, 헌법재판소를 배회하며 곡기를 끊은 시인을 만들었습니다. 구호와 표어가 꽃잎보다 흔해진 봄이 되어 맞는 첫 그믐 밤에, 그래도 한사코 밀물 같은 희망으로 당신에게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