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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진 Dec 24. 2023

12월, 지금은 닭을 튀길 시간

12월, 온 세상이 크리스마스로 뒤덮이는 시간. 크리스마스는 내게 그 자체로 의미가 있진 않다. 한 해의 끝자락에 있기에 의미가 있을뿐. 한 해동안 안간힘 쓰고 살아온 당신, 떠나도 좋겠고 아니라도 쉬어라, 혹은 삶의 템포를 늦춰라. 


크리스마스가 크나큰 의미가 있는 캐나다에서는 나같은 사람도 있기에 다만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더 폭넓게 'happy holiday'라고 명명하기도 한다. 종종 동양인인 내가 크리스마스를 '기리는'지(celebrate) 질문을 받기도 한다. 크리스마스를 기리는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가족들이 모이고 맛있는 것을 먹고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존재를 감사해하고 축복하는 것이 되리라 짐작해본다. 


나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면, 정확히는 12월중에서도 하순께로 가는 그 무렵이면 마음을 먹는 일이 있다. 인간의 정서를 위로하고 보듬는데 음식이 큰 역할을 한다고 믿는데, 별 특별할 것 없지만 그냥 한국인들이 많이 먹는 음식, 예전에 많이 먹던 음식, 소위 정서가 들어있는 음식들을 의도적으로 막 먹는 것. 


주로 12월 22일 동지팥죽부터 시작을 한다. 난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동짓날'에 신경쓴다. 1년 중 밤이 가장 긴 날. 사실 캐나다는 12월21일부터 공식적으로 겨울이 시작일이다. 그 이전부터 눈이 왔어도 그 때는 엄밀히 가을이었던 것. 뭔가 맞지 않는 느낌이지만 이들의 사고는 그렇고 우리 조상들의 사고는 밤이 가장 긴 날을 굳이 꼽아서 다음 한 해의 액막이를 기원하면서 새 해 맞을 마음의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나는 이 부분이 '정서적'으로 좀 멋스럽게 느껴진다. 


여기에 기녀였던 황진이의 시를 보태어 낭만과 풍류를 보탠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 님 오신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아 멋있어 멋있어. 이번 동지엔 팥죽 대신 팥칼국수를 해먹었다. 아주 오래 전 전라남도 지역을 여행하다가 순천 5일장에서 먹었던 팥칼국수가 왜그리 생각나던지. 내가 먹고 싶어 하는 것들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추상속에 존재하는 맛들이라고나 할까. 무엇이든 초현대판이고 세련을 추구하고 글로발을 지향하며 세계 최고만을 지향하는 내 고국 본토에는 나의 그 '정서적인' 맛들이 더는 없다. 떡볶이나 붕어빵조처 대기업의 것이 되어버리는 추세인 것 같으니까. 여기 캐나다에서는 딱 그 맛을 찾을 수 없고 지금 당장 본토에 간다해도 그것은 남아있지 않다. 


완성된 나의 팥칼국수는 순천 5일장의 것을 재현해내지는 못한 듯하다. 아마 면을 밀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아쉬우나마 나는 정성껏 만들었고 더욱 정성들여 먹었다. 그리고 다행히 다음날 쉬는 동짓날 기나긴 금요일 밤에 맘 푹 놓고 영화 두 편을 보았다. 12살에 가족들과 이민을 떠나게 된 소녀와 그녀를 좋아했던 남겨진 소년이 12년 뒤, 그리고 또 12년 뒤 서로 찾고 만나게 되면서 한국의 정서 '인연'을 생각하는 이야기인 '패스트 라이브즈' 와 네플릭스 영화 'the commuter' . 


오늘은 닭을 튀길 계획이다. 한국에서는 주문하면 내 손에 떡하니 주어지는 치킨이 일상인줄 안다. 상징이기도 하고. 사실 튀김을 즐기지 않고 무엇보다 배달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거기엔 별 추억도 없고 따라서 정서랄 것까지도 없다. 하지만 한국의 맛은 곧 치킨인 것처럼 된 요즘, 신세대인 나의 아이들을 위해 나는 이맘때 닭을 튀긴다. 여기서도 사먹을 수는 있는데 가성비가 너무 아닌거라. 양껏 먹으려면 5만원이 넘는다면 그또한 가볍게 배달시켜 먹는 '정체성'을 충족시키지 않는 것 같아서다. 어제 촌스런 동지 팥칼국수에 예의상 호응해줬던 녀석들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기꺼이 오늘은 닭을 튀길 마음의 준비가 돼있다. 이밖에도 정서의 맛 목록은 더 있다. 떡볶이 + 오뎅, 그리고 탕수육. 


자, 튀김 기름 일발 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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