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법규에 임하는 우리의 능숙한 자세
제목 '까라면 까라', 먼저 이것이 과연 여염집 여인이 갖다 써도 품격에 누가 될만한 말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고백부터 하기로 하자. 다만 우리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는 말이니까 적절치 않더라도 그냥 양해를 구하며...
'까라면 까라'에는 처음부터 개인에 대한 존중은 아예 배제되며 설득이나 타협 등은 쏙 빼버린, 참으로 무식하고 무교양하며 몰문화적인 명제가 아닐 수 없다. 군사문화에서 유래한 절대복종, 상명하달식 사고와 행동방식은 퍽 숨막힐법도 한데 우리는 그것이 마치 우리의 정신적 유산이기라도 한듯 용인한채 살아온 듯하다. 아들딸 구별않는 깨인 부모에게서 낳고 길러진 신세대들이 인구구성상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지금도 전체 틀은 바뀌지 않은채 직장에서도 직급서열따라 '까라면 까라'정서가 여전히 지배적인걸로 알고있다.
그렇다면 캐나다의 경우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서라면 서라'? 또하나 더 들자면 '쓰라면 써라'?
캐나다에 처음와서 한국에는 없는 사거리 stop표지판이 참 낯설었다. 일단 모두 멈춘 후 먼저 선 순서대로 출발하는. 한국에도 '멈춤' 표지판이 있지만 그건 '속도줄임' 표지판과 더불어 본인의 상황판단에 적절히 '유도리'있게 할 일이지 꼭 지킬 일로 인식이 되는건 아니지 않은가. 어느날, 아이의 스쿨버스 정류장에 픽업가는 길에 일부러 일찍나가 한참동안 관찰한 적도 있었다. 캐나다 사람들이 아무리 규칙 잘 지키기로서니 설마 4거리에 혼자 지나가면서도 서진 않겠지 하면서...
어? 진짜 서네. 어~ 정말로? 이 차는? 저 차도? 무슨 잠복근무중인 형사처럼 한참을 지켜보는 20분동안 한 껀수(?)도 못올렸다. 한때 개그맨 이경규가 진행하던 TV 프로그램이 기억난다. 일본에선가 한적한 새벽시간에 도로에서 몰래 지켜보다가 정지선 지켜 서는 차량의 운전자에게 냉장고 선물하던. 당시 굉장히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프로그램이었는데, 그후 우리도 본받아서 정지선 지키기가 완전히 정착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쓰라면 쓰라'는 뭐냐. 자전거를 탈 때 꼭 헬멧을 쓰라면 쓰더라는 얘기. 어찌보면 당연한 건데 그게 특이하게 보이다니. 우리는 길에서 가볍게 자전거를 타면서 헬멧을 쓰면 왠지 '난 지금 자전거를 벌벌 떨면서 타고있는 중임'이란 표시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거의 아무도 안쓰지 않나. 하물며 동네에서 헬멧 쓰고 자전거 타는 꼬맹이를 찾아보기 어렵다. 자전거 헬멧 뿐인가. 안전을 위해 하게 되어있는 보호장구등에 소홀한 경우가 흔한거 어제 오늘이 아니다. 어떤 사항이 명시돼 있어도 그건 어디까지나 '교과서'에 나오는 말일뿐 실제는 다른 법. 요구되는 건, 참으로 편리한듯 해보이지만 사람잡는 그 '유도리'있게 하는 센스!
캐나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차량 번호판에 붙이는 스티커(매 년 차량 등록자의 생일을 기준일로 교체하게 되어있는 것) 에 대해 모른채 날짜 지난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다가 길에서 경찰에게 멈춤을 당한뒤 한 수 배운적이 있었다. 그때 뒷자리에 한국에서 하던대로 맨몸(?)으로 앉아있던 아해들, 경찰나으리의 벨트 매라는 주의에 바짝 얼어가지고 후다닥. 운전자는 아이들을 태울 때 전원이 벨트를 매지 않으면 출발을 하지 않는다. 나는 어쩔땐 일단 출발하고 나서 벨트를 매기도 하고 도착지점이 다가오면 미리 벨트를 푸는 습관을 여전히 못고치고 있다.
지난번 한국 방문중 택시를 탔는데 앞자리에 탄 할아버지가 벨트를 안매자 뒷자리에서 녀석들이 할아버지 벨트 안맸다며 지들끼리 수군대다 권유를 하자, 자신도 안매고 있던 기사양반 말씀이, '거 안매도 돼요.'. 마치 승객에게 벨트 매도록 강권하는건 21세기 운수업계 종사자로서 세련된 대고객 매너가 아니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국에 있는동안, 아이들은 태어난 이후 기억이 날 시기의 전부를 살았던 동네를 너무나 가보고 싶어 했는데, 나역시 내심 확인하고픈게 있었다. 3년 전, 동네 교통흐름에 상당히 문제가 됐던 고질적인 불법주정차 단속구간은 지금쯤 어떻게 잘 정착이 됐을까? 이렇게 말하니 무슨 '똘아이' 냐고 할 법하지만, 나는 우리가 한 사회의 시민으로서 살아가는 방식의 차원에서 참 중요한 문제라고 보았던 사안이다. 단속이 한번씩 뜨다가 나중엔 360도 회전하는 카메라를 설치했는데 그래도 달라지지 않는 이유가 난 너무 궁금했었다. 경고문구와 달리 불법주정차량에 티켓이 제대로 발부되질 않는건지, 아니면 모두가 그 동네에 처음 와서 모르고 차를 대는 사람들인건지. 그런데 3년이 되고도 제대로 개선이 안되는 이유. 정말 뭘까 도대체. 당시에 카메라를 설치하니 알고지내던 한 아줌마는 쿠킹호일을 번호판 사이즈에 맞게 잘라 가지고 다니면서 주차한후 번호판 가리고 볼일 보러 가는 놀라운 상황 대처 능력을 보였다. 어쩌면 제품으로 나올는지도 모른다. '주자단속 걱정되세요? 걱정 노 노. 이제부턴 안심하고 아무데나 주차하세요~ 주차단속 안심이가 당신의 차를 지켜드립니다아!' 하는 광고와 함께.
솔직히 내가 가장 많이 '수업료'를 지불한 부분이 바로 이 주차다. 집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콸콸콸 쏟아진 것.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는 마을버스의 편리함이야 두말할것 없이 별다섯개를 줄 일이다. 하지만, 2차선 도로에 인도와 차도 사이에는 난간이 설치돼 있고 차선하나를 불법주차된 차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을버스 아저씨는 나를 내려주시네. '무슨. 그. 지옥..?'이 절로 나올 상황아닌가. 아 어쩌라고... 내리자마자 아이들에게 동작그만을 명령하고 일단 차가 떠난 다음 출구를 둘러봤다. 불법주차된 앞차와 뒷차 사이가 오직 우리가 서있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 다음 인도와 차도 사이에 쳐진 난간이 뚫린 데를 찾아 걸어가야 한다. 난 2인의 대원을 이끌고 무사히 인도에 상륙해야 하는 소대장의 심정으로 대원들에게 지시했다. 일동 정신 바짝 차릴 것. 핸드폰은 주머니에 넣는다 실시! 적들이(차량들) 올 수 있으니 180도 시야를 넓힌다 실시! 우리 소대는 결국 인도에 무사히 상륙하여 우리가 좀전 작전(?)을 펼쳤던 곳을 돌아보니 참 아찔할 정도였다. 어떻게 저런데다 승객을 내려줄 수가 있는지.
또하나의 에피소드. 원래 우리나라 도로에선 차량 운전자가 갑이고 보행자는 을이었던가? 신호등이 있는 구간의 횡단보도야 별 문제없는것 같은데 인도 가까이에 신호등 구간이 없는 작은 건널목, 그거 참 긴장되는 구간이다. 보행자 선두그룹이 진입하려는데 저 멀리서부터 애교있게 '스타카토'로 경적을 울리며 자기가 먼저 지나가는 차량은, 아마 진통주기가 잦아지기 시작한 임산부를 태우고 지금 병원 응급분만실 가는 길일거야...음 그럴 수도 있지... 그런 건널목을 혼자 건너간다? 보행자가 걷고 있는데도 운전자는 악셀을 조금씩은 살짝살짝 밟아주신다. 그러다가 나도 멈추고 한번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면 다시 브레이크로 발을 옮기고. 또 가면 다시 악셀로. 아 뭐하는데... 아하 몰랐으. 요즘은 도로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한다는걸. 그러다가 맘을 고쳐묵는다. 내가 빨리 안지나가면서 꼬나보기까지 하면 저 사람이 트렁크에서 도끼를 꺼낼지도 몰라.
젤로 안심되는건 다른 많은 보행자들이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스크럽을 짜고 건널목으로 진입하는 것. '운전자는 안전보행 보장하라 보장하라 보장하라!' '다 건널때까지 꼼짝마라 꼼짝마라 꼼짝마라!' '보행자 대동단결, 건널목을 사수하자 사수하자 사수하자!'를 외치면서. 단, 각자 속으로만.
단속한다면서 제대로도 안하는 공무 집행 행태. 근데 그거 다 세금으로 하는거 아닌가. 또 왜 우리는 하게 돼있는걸 그토록 안하는 사람들인건가. 비단 교통규칙 말고도 개인의 능력껏 '꼼수'를 부려 법망을 살살 피해가는 사람들, 그게 곧 능력인 사회. 그렇다면 말만 그렇지 정작 까라면 까지도 않는거 아닌가.
좋은 의미로 '까라면 까라'를 실천하면 '쑥맥'이 된다 이거다. 내가 흔히들 쓰는 말중 참 싫어하는 두가지. 똥폼잡고 전문가연 하며 하는 말이지만 되게 천박한 말, '선수끼리 왜이래' 와 '장사 한두번 하나'...
거두절미하고 규칙 절차 무시해야 마땅히 '선수'라는 인식. 장사 한두번 하는거 아니면서도 순리를 따르지 않고 편법이나 꾼들의 꼼수를 쓰다가 망하는것도 한두번이 아니잖은가. 다리가 무너지질 않나 삐까번쩍하던 백화점이 무너지질 않나. 배가 가라앉아 버리기도 하는데 뭘...
권위주의의 발상으로 불합리한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에 의해 정해진 것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운용되는 합리적인 시스템속에서 누구나 '까라면 까'는게 당연한게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그래서 바보된 느낌 들 때 있었지만, 난 캐나다에서도 정말 까라면 깐다. 세금신고 하라면 하고, 세금 내라면 내고, 교통법규 지키라면 지키고. 왜냐? 해야할 것 제대로 안했다가 영어로 세무 공무원들이나 경찰 상대할 생각하면...닥치고 걍 하는게 신상에 이로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