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언어든 욕이 있게 마련이고 그 욕은 욕으로서 외국인에게도 잘 포착된다고 한다. 세상에 'Fxxk'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은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전세계인이 즐기게 되면서 외국인에게도 한국어의 '시발'이 글로벌 욕으로 부상했다고 하는 소식도 들은바다.
하지만 '시발'은 사실 차마 내 입으로는 말하기 어려운 발설이어 왔다. 그런데 적절한 때 남이 하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는 말이라 생각한다. 내가 주로 접하는 출처는 한국 영화에서이다. 시발은 좀 더 상스럽게, 때로는 '드럽게' 씹어 뱉을수록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영화같은 데서는 캐릭터에 따라 발음이 변주된다. 입모양을 일그러뜨리면서 동시에 눈을 부라리고 장음과 된소리를 조화시키면 공포감이 느껴지며, 모음을 ㅏ에서 ㅓ로 바꾼뒤 뒤에 '놈'을 붙이면 좀더 살벌해지는 효과를 낸다. 사람마다 다른 분위기와 효과를 내는 참 매력있는 단어다.
극중에서 옷차림새도 말끔하면서 소위 전문직업 종사자, 또는 가방끈이 긴 자들이 '시발'을 외치면 어지간히 분노에 차있는 경우가 잘 표현된다. 미모의 여성이 이 두 음절을 찰지게 발화한다면 이는 의외의 화끈한 일면을 내보이는 경우로 이해됨직하다.
실생활에서 누군가에게 그 말을 직접 듣는다면 어떨까. 매우 불쾌하고 심한 모욕감을 느끼게 되겠지만 극중에서 나는 '시발'을 즐기며 아무 맥락없이 남발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시발의 쾌감을 아끼는 사람인듯 하다.
하지만 '시발'은 내 언어생활에 존재하지 않는다. 내 입에 붙어있지도 않거니와 이제는 '곱게 늙어감'을 지향해야 하는 시점에 어쩐지 심하게 민망한 노릇이 아닐까. 아니, 실은 '제대로' 못해낼까봐서다. 다소 소극적으로 하거나 부끄러움이 조금이라도 묻은채 내뱉으면 그 맛이 안사는, 알고보면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한국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영어권에서 살고 있대서 'Fxxk'을 애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이 '시발'이 내 입에서 나왔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인은 DNA에 각인이 돼있기라도 한 것일까. 얼마전부터 운전중에 차에서 소리가 났다. 나는 오랜 운전자이지만 핸들과 바퀴정도만 아는 상당히 차량에 무지한 운전자다. 언젠가 차량 해부학과 정비지식을 갖추리라 다짐만 오래인. 까막눈이면서도 한번 앞뚜껑을 열어봤다. 분홍색의 저 액체가 왜이리 수위가 낮지? 싶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왠지 뭐가 됐든 충분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 검색해보니 부동액이었다. 그래서 한번 채워보고 살펴보기로 하고 부동액을 사서 부으려 시도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 수 없었다. 마땅히 열려야 하는데 안열리니 짜증이 났다. 다시 닫고 몇 번을 시도했는데 매번 실패했다.
검색을 해봤더니 유투브등에서 장비를 가지고 그냥 돌려서 여는 것을 봤다. 아, 원래 빡빡한거구나 여기고 집에 있는 스패너를 들고 나가 뚜껑을 열고 스패너를 들이대니 그들의 것과 내 부동액 통의 뚜껑 모양이 달랐다. 아 씨이... 별 수 없이 맨 손으로 다시 한번 돌려보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상황. 도대체 몇번째인가 싶어 나는 화가 치미는데 전과 마찬가지로 꼼짝않는 뚜껑에 분기탱천해서 기대없이 '에이 씨발~'을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돌렸다. 어라, 열렸다!
어제는 브리타 정수기의 내부를 닦으려 빼려 하는데 딱 붙어 안떨어지길래 몇차례나 시도했는데 잘 안됐다. 이번에도 어느 순간 화가 나면서 '에이 씨발~'이 외쳐짐과 동시에 집중된 힘이 가해져 분리가 되었다. 호오... 실로 시발력, 아니 시발마력이라 해도 좋지 않을런지.
이로써 나는 시발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내 언어생활의 확장이라고나 할까. '시발'은 더이상 못배우고 교양없고 상스러운 부류의 인간들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싶다. 시발은 힘이 있다. 살면서 고착된 어떤 문제들을 돌파하는 힘을 줄거라 믿는다. 시발은 힘이 세다.
새 해를 맞은 시점에 '시발'을 도입한 마당에 이와 관련된 명제 하나를 소환해보련다. 지금은 유투브 언론인으로서 영향력이 있어진 김어준의 오래전 모토를 2026년 앞에 서서 다시한번 외쳐보자.
"쫄지마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