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것처럼 영화를 좋아한다. 아니, 열렬히 사랑한다. 스스로 넓은 스펙트럼을 주장하곤 하지만, 판타지는 썩 즐기지 않고 전쟁영화나 심한 공포물은 선뜻 내키지 않아하니까 실상은 스펙트럼이 그리 넓은게 아닌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환영하는 것은 법정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법정 영화는 '어 퓨 굿맨'. 젊고 잘 생긴 톰 크루즈가 수완은 좋으나 인성으로는 재수없는 뺀질한 해군소속 변호사역을 연기했다. 그리고 미드 '굿 와이프'에는 멋지고 프로페셔널한 차림새로 당차게 변론을 펼치는 변호사들이 널렸다. 그런가하면 송강호가 보통의 사람냄새나는 변호사로 나온 '변호인'도 있다.
앞의 두 작품에 나온 변호사들은 흐트러짐 없는 외양에다 똑부러진 논리로 채운 빈틈없는 언변으로 무장한 반면, '변호인'의 변호사는 외양에서 특별한 스타일이랄 것은 없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취득한 성실한 전문직업인으로서 상식의 미덕을 갖춘 인간미를 바탕으로 호소력을 보이는 타입이다.
둘의 공통점은 있다. 바로 법정물을 보는 매력이기도 할 논리 싸움. 변호사가 상대나 자기쪽의 증인이나 피고 또는 원고에게 질문을 할 때 의도가 느껴지는 부분 말이다. 관객은 어떤 식의 논리를 펼치기 위해 저 질문을 하는구나를 따라가며 집중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있다. 상대편의 'Objection~' 또는 '이의 있습니다~'. 나는 얄짤없는 고 부분 참 좋아한다. 얼마나 긴장감 있나 말이다. 조금이라도 늘어지거나 빈틈이 보이면 바로 날라오는 외침.
재판장의 위엄 또한 볼만하다. 내가 눈여겨 보는 부분은 양측 관계자들이 다 들어와 있는 상태에서 재판장이 들어올 때 법정에서 울려퍼지는 'ALL RISE~'다. 재판장은 한 개인이 아니라 법정의 권위를 상징하는 존재로서 변호사처럼 패셔너블할 필요는 없지만(법복을 입기에 그럴 수도 없고) 간결한 언사로써 핵심에 접근해야 하는 자리다. 변호사들이 툭하면 외치는 이의제청이나 기타 발언을 할 때면 꼭 '존경하는 재판장님'을 붙이지 않던가.
변호사가 발언할 차례가 되어 자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서 구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며 천천히 걸어나올 때부터 뭔가 기대감이 생긴다. 그 때 조금이라도 위축되어서 걸어나온다면 게임은 지고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어 퓨 굿맨'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것은 네가 정확히 예견했던 것처럼 보이도록 해."
속으로는 있는대로 쫄아있어도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당당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리라. 한국영화 '성난 변호사'에는 법정에 처음 서는 변호사가 너무 긴장한 나머지 법정 입구앞에서 구토하는 변호사도 있긴 하다.
평범한 시민의 경우, 자신이 법정에 서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닐까. 방청을 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법정이라면 이렇듯 허구속에서 접하다가 요즘 우리는 실제 재판의 모습을 미디어를 통해서 '구경'하게 되었다. 그것도 개인들의 이해관계가 아닌 거국적이고도 시대적인 사안의 재판들.
그런데, 얼마간 지켜보던 나는 탄식을 내뱉는 순간이 많아졌다. 아, 다들 뭐 이래...물론 허구의 작품속 인물의 모습이나 행동과 실제 현실에서의 그것은 다르다는 것은 잘 알고 있는 바다. 하지만 엄중한 법 질서와 논리에 의한 사실 규명이라는 본질은 어디로 갔느냐 말이다. 재판장의 권위와 위엄, 변호사들의 날카로운 언변으로 인한 멋짐은 단지 판타지일뿐인 거냐고.
위엄하나 없는 재판장 하며, 똑떨어지는 정장은 커녕 허접한 마스크를 걸친 인간이 없나, 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도 모르게 길게 늘어지기만 하는 질문들, 무엇보다 법조인인 본인들이 법정을 존중하지않는 되먹지 못한 태도, 그리고 거짓말들.
내가 보아온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신에 맹세'를 선언하지 않아서일까.
재판 중계 영상을 보면서 혼자서 외치고 싶은 심정이 된다. "objection~''이의 있습니다~' 라고.
아, 정신건강을 위해 차오르는 분노와 역정을 가라앉히자.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법정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내 탓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