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심려' 그 이상이다

by 대륙의 변방

우리는 -시민, 국민, 그러니끼 대체로 선량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을 의미한다- 해뜨면 거의 날마다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는 판에 박힌 사과를 받는다. 옆구리를 찔러서도 받고 그냥도 받고 하여간 참 많고 많다.


지난 몇 년동안 대한민국을 비공식적으로 주물렀던 김 모씨는, 최근 그들이 뻑하면 읊어대는 대다수 국민들을 뒷목잡게 하였지만 본인은 화장실에 가서 제 지아비의 '어퍼컷 세러머니'를 몰래 할만한 선고를 받고는 한껏 겸손한양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저로 인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모든 분께 송구하게 생각한다."


이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작년 12월 있었던 결심공판의 최후진술에서도 말했다.


"억울한 점도 많지만 제 역할과 자격에 비해 잘못한 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국민들께 큰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죄송하고 반성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 우리는 한번 더 들은 바 있었다. 지난 여름, 특검팀에 출석하며서도 그랬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심려를 끼쳐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한편,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리에 올랐다가 폭언 갑질을 비롯 아파트 부정청약 등 갖가지 의혹이 너덜너덜한 이혜훈 전 후보도 그렇게 말했다. "심려를 끼쳐 송구하다."고. 그렇겠지 왜 아니겠는가.


그 전엔 강선우란 국회의원도 있었다. 더불어민주당 시절 한 서울시 의원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경찰해 출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서 진심으로 죄송하다"라며 "저는 제 삶의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지키는 삶을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강선우 의원에게 돈을 갖다준 사람(김 경 전 서울시 의원)도 비슷하게 말했다.


"국민 여러분께 여러가지 심려를 끼쳐 드린 점 진심으로 송구합니다.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호기심에 한번 네이버 검색창에 '심려를 끼쳐드려'란 문구를 넣어봤다.

강호동이란 이름의 농협회장이 해외출장 때 숙박비를 초과 지출한 사실이 농협중앙회 특별감사 결과 밝혀지자 '심려 끼쳐드려 책임통감'이라고 나왔다.


요즘 인기 프로그램이라는 '흑백요리사'에서 인기 셰프라는 사람이 유투브 방송에서 음주운전을 고백하면서 "우리 구독자분들에게 사과하는게 맞다. 숨기는 건 아니다. 괜히 심려 끼쳐드린 것 같아서 구독자분들께 죄송하다"고 했단다.


강원 태백시 택백산 눈축제 현장에서 노점상 위생논란이 있을 때도 이 말은 나왔다.

"방문객께 심려를 끼쳐드려 사과드린다. 남은 축제기간에 위생 안전관리 전반을 강화하겠다"고.


그런가하면, 스타벅스 코리아가 지난해 행사 증정품으로 제공된 가습기에 리콜을 실시하면서도 나왔다.

"이번일로 고객께 심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고객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신속하고 철저하게 리콜 절차를 이행하겠다."고.


하도 많이 듣고 보다 보니 궁금해졌다. 이 영혼없는 상투적인 사과문구의 그 '심려'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사전적 의미인즉슨, 마음속으로 걱정함. 또는 그런 걱정.

그렇다면 그들의 천편일률적 사과 멘트는 전혀 적절하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의 자리에 걸맞지 않은 행위나 처신, 나아가 비열한 인간됨에 대해 우리가 갖는 감정이 걱정 정도겠냐고. 사안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들에 대한 평가가 고작 마음 불편함 정도겠냐고. 그렇지 않다.

실망, 절망, 수치, 혐오, 경악, 허탈, 그리고 분노 등등, 결단코, 당신들이 관성적으로 갖다쓰는 심려정도가 아니다. 분명코 그 이상이다!


날이면 날마다 우리에게 심려를 끼치는 무리가 너무 많다 보니 잦은 '심려 스파이크'에 '만성 고심려증'이 범국민건강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우려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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