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한 사내가 있다. 흔한 표현으로 '고뇌에 찬' 모습이 별로 없어보이는 한 사내. 60여 년 그가 살아온 궤적에 생성된 일련의 사건들 또는 경험들은 그의 뇌안에 있는 밝혀진 바 없는 무언가에 의해 '무조건 긍정 모드'으로 전환되어 사고하게 되는 특이점이 드러났다. 이 사내를 학계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은밀히 연구 과제로 삼고자 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는 카더라 통신도 떠도는 실정이다.
항간에서는 인류의 극소수만 보유하고 있다는 특정 분비물의 작용이라는 설도 있고 한편에서는 역시 희귀한 호르몬의 영향이라는 설, 유전자 자체가 100년 주기로 한번씩 나타난다는 설에 이르기까지 주장이 분분한 중이다. 뭘해도 중압감을 느끼지 않고 어떤 행위의 결과에 대해 과오를 과오라 여기지 아니하며 후회나 자책의 감정이 전혀 일어나지 않는 특이한 인간유형의 사내.
현대인은 과거에 비해 물질적 풍요에 비해 행복해 지지 않았으며 우울 불안을 비롯해 각종 정신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가운데 이 사내와 같은 유형은 분명 의미있는 연구 대상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지구상에서 행복지수가 낮고 자살률이 높은 이 나라에서는 특히 해볼만한 연구가 될만하겠지만 연구 개발 예산이 삭감되었기 때문에 이조차 쉽지 않은터다.
대신 '마음편한 사람들'이라는 비영리 연구단체에서 펼치는 '국민 정신건강 증진' 캠페인에 연구모델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단체에서 주목한 점은 유독 성취나 남들과의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삶의 목적으로까지 삼는 사회 분위기, 그리고 실패에 대해 너그럽지 않은 사회에서 이 사내의 인생의 문제에 대처하는 특이한 자세를 자용한 것이다.
'국민 정신건강 증진 운동본부'가 이에 호응하고 시행중인 '범국민 마음먹기 캠페인'의 세부 실천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차피 뭐 대기업에 다니나 중소기업에 다니나...
어차피 뭐 서울대에 다니나 oo대에 다니나...
어차피 뭐 강남에 사나 강북에 사나...
어차피 뭐 자기집에 사나 월세에 사나...
어차피 뭐 100점 맞나 50점 맞나...
어차피 뭐 연봉 1000만원 받나 100만원 받나...
어차피 뭐 50평 아파트 사나 18평 사나...
어차피 뭐 벤츠 타나 자전거 타나...
어차피 뭐 명품빽 드나 시장표 가방 드나...
어차피 뭐 김치찌개 먹나 신선로 전골 먹나...
운동본부 홈페이지에는 '어차피 뭐' 제안하기를 통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또한 '나는 '어차피 뭐' 마음먹기로 이렇게 행복해졌다' 코너에서 누구나 자신의 체험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한편, 이 캠페인의 원천 모델의 무한긍정 사내는 오늘도 김치찌개를 안주로 곁들여 소주 한 잔 하면서 편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측근은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