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배우 한 사람 때문에
연이틀 두 번 본 영화

by 대륙의 변방

난 말이지, 영화팬이야. 뭐 특별할 거 하나 없는 이야기지.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 액션, 드라마, 스릴러, 뭐 또 느아르? 등등이 있다면 거기에 나는 콤마 하나 찍고 척 갖다 놓는게 한국영화야. 모르겠어. 한국영화를 특별한 지위(?)로 격상시키는 건 해외에 살고있는탓에 쉽게 접하기 어려워서일까?


그래서 늘 새로 나오는 영화 소식에도 관심이 많고 뭐 놓친 거 없나 늘 챙기지. 하지만 해외살고 있다는 제약때문에 늘 그림의 떡이지만. 요즘 '왕과 사는 남자'가 흥행에 성공중이라며? 영화에 있어서 성공작의 상징이 된 '천만'을 곧 돌파하겠다는 소식을 봤어. 사실 나는 그 영화와 함께 '휴민트'도 벼르고 있지만 말야. 아, 언제나 볼 수 있을까나.


'왕과 사는 남자' 대신 나는 요즘 이십년 전에 나온 영화에 푹 빠졌드랬었다? '형사 duelist'라는 영화야. 실제 역사적 사건이 배경이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알 수 없어. 조선시대란 것밖에는. 남녀 콤비 형사가 주인공이니 조선시대판 '투캅스'쯤 되겠다 그치? 사실 내가 별로 안끌려하는게 있다면, 퓨전사극 이딴거. 모든게 현대식인데 옷만 한복을 입혀놓은거 그런거 있잖아. 근데 사실 이 영화도 어찌보면 그렇다고 볼 수 있는데 그냥 봤어. 하도 배가 고프면 이거 저거 취향을 가릴 처지가 아닐 때가 있지 않겠어? 하하.


얼마전에 세상을 떠난 배우 안성기의 안정된 연기를 즐기리라 하고 보기로 했지. 이 영화가 내세우는 소위 장르는 무협액션? 쯤 돼. 그런데 하지원도 나오더라고. 음, 나쁘지 않아. 내가 원래 시대극을 볼 때 고증같은걸 좀 신경쓰고 앉았는 사람이라고. 조선시대를 사는 여자 주인공이 사이드 뱅 & 레이어드 쉐기 스타일의 긴머리를 풀어헤치고 심지어 의상도 배꼽 내놓은 크롭 저고리를 입는다? 음... 평소 같으면 거기까지 보고 덮었을게 뻔했겠지만 너그럽기로 작정했었기 때문에 군소리 없이 있었어. 그런데 그것은 혹시 그 후 등장한 이 배우, 강동원을 만날(?) 운명적인 선택이었던 것일까. 풉.


강동원은 여기서 병조판서를 보필하는 칼을 쓰는 자로 나오는데 대사가 통틀어 열마디도 안되는 것같아. 주로 눈빛과 몸으로 표현하는 연기를 해. 영화를 보고나서 기사들을 좀 찾아보니 5개월동안 현대무용을 배웠대. 대회 나가자고 할 정도로 연마했다는거야. 음...그랬었구나...과연 차암 아름다웠숴... 하지원과는 3개월동안 선무도와 탱고를 익혔다고 하고. 나는 그렇게 배우들의 뒤에 가린 남다른 노력을 알게되는 것도 좋더라고. 그런데 내게 긴 여운을 남긴건 그의 몇 안되는 대사였어. 인터뷰 기사에서 보니 그는 대사가 많지 않아서 좋기도 하고 안좋기도 했다더라고.


내게 콱 꽃힌 대사가 뭔지 알아? 뭐 대단한 말도 아니야. "이름이 뭐요." 야. 고작 이름 물어보는 말이라고. 흔히 배우가 막 분노에 차서 감정을 폭발시키거나 길고 멋진 말을 청산유수로 쏟아내거나 하는게 명 연기일거 같잖아. 근데 달랑 이름이 뭐요? 이걸 어떻게 남다르게 할 거냐고.


자, 한번 변형시켜보자고. 이름이 뭐에요? 이름이 뭡니까?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이름이 뭐꼬? 이름이... 까지만 흘리듯 말해도 될걸. 요즘 부쩍 많이 들리는 이상한 식으로 하자면, 이름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혹은 이름을 말씀해 주실게요~ 하면 어땠을까. 아, 좀 깨는데? 이름이 뭐요...가 젤 낫긴하네.


근데 이 밋밋하고 수사 하나 없는 이 말이 어떻게 멋질 수 있는거지? 강동원이 연기한 인물은 정작 이름이 불리우질 않아. '슬픈 눈'으로만 크레딧에 나와. 근데 내 귀엔 단조풍으로 들리는 그 '이름이 뭐요...'에 묘한 여운이 남는거야. 상대에 대한 관심을 들이대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무심한듯 적당히 존중을 담아 예의껏 표출하는가운데 내면의 깊은 슬픔을 풍겼달까. 꺅~~. 이거 뭐지?

형사2.jpg

그 다음날 일상을 살면서 문득문득 떠올렸어. 이름이 뭐요...높낮이 하나없는 단일 톤의 짧은 문장에 어떻게 그런 분위기를 낼 수가 있지? 운전중 우측 깜박이를 넣으면서도 한번 해봤어. 이름이 뭐요... 설거지를 하던 중에도 한번 해보는거지. 이름이 뭐요... 심지어 양치를 하다가도 치약거품 물고도 해봤다는거 아니야. 이름이 뭐요...


결국 한번 더 보고야 말았어. 영화를 두 번, 아니 그보다 더 본대도 잘못된 건 없지 물론. 근데 연짱 이틀을 본 건 나도 처음 해본 일이거든. 그것도 딱 배우 한 사람 때문에. 총 열마디도 안되는 대사를 묘한 슬픔이 배어나오게 한건 매끈한 외모의 후광 효과였을까 아니면 연기의 탁월함이었을까.


'슬픈 눈'이 말한 '이름이 뭐요...'가 만일 내게 향한 것이었다면 나는 끝내 이름을 말하지 못한채 내 닉네임은 아마 '터진 심장'이 되었을거야. 흐흐흐흐. 앞으로 이 배우의 작품을 꼭 꼭 챙기게 될 것 같은 예감을 확신하면서 오늘 모노수다 끝~~~~~~~~~~.

매거진의 이전글코로나속 명절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