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셀프. 명절도 셀프
내가 이 공간에서 모노 수다를 떨든 조용히 입 다물고 있든 시간은 착착 흘러가는구만. 어느새 9월을 지나더니 날씨도 선선을 넘어서 아침저녁으론 은근히 춥기까지 하니까 말이야. 가을! 하면 곧 따라오는 게 있지 않겠어? 추석! 사실 이곳 캐나다에서 산 지 한 해를 더해 갈수록 그런 명절 감각이 옅어지는 게 사실이야. 네이버 같은 데서 올해 추석은 언제인지 음력 날짜를 찾아보고 확인하는 정도니까 말이야.
해외에서 살면서 명절 때가 되면 아련히 그리움이 몰려오지 않냐고? 글쎄... 장기간의 중증 '명절증후군' 병력(?) 보유자로서 특정 이벤트를 유발인자로 한 급성 중증 알러지 증상 소견을 가진 나의 경우는 그럴리는 없지 않을까. 그렇다고 날아갈 듯 환호를 외치게 되지도 않아. 사는 일에 몰두해서 그랬는가 첨부터 걍 무덤덤 그랬다고. 어떤 사람들은 고향생각, 가족들 생각에 제대로 차례상도 차려서 기린다는 이야기도 들어는 봤어. 내게는 무슨 전설을 넘어 신화같은 이야기지만.
얼마전 딸내미가 묻더라고.
엄마 이제 곧 삶의 보람을 느끼는 때가 다가오네?
캐나다에서 산지 5년을 꽉 채운 3년 전 어느 날, 아이들과 장난처럼 나눈 이야기를 아이가 기억하고 하는 말이야. 지난 5년 기억에 남는 좋았던 5가지, 안 좋았던 5가지를 말해보는 시간을 가졌었거든. 캠프에 참여한 일, 학교에서 퀘벡에 여행 간 일, 원 없이 스케이트를 탄 일, 3년 만에 한국에 간 일, 원더랜드 놀러 간 일, 어느 해 크리스마스 때 엄마 아빠 없이 자기들끼리 서브웨이 샌드위치 먹으며 코난 만화영화 실컷 감상했을 때 등등등. 굵직한 일도 있었고 그냥 어린것들 특유의 즐거웠던 순간도 꼽았지.
안 좋았던 건, 초기에 영어를 몰라 서러워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가서 운 일부터, 한국 야구가 WBC에 진출했을 때 직관 못하는 것, 프로야구 기아팀이 승승장구할 때 현장에서 감격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현장에 있어보지 못한 것 등등 거의가 한국 그리움이었고. 한참을 조잘대다가 작은 넘이 내게 물었어.
엄마는 별로 없었을 거 같아, 힘들기만 했던 거 아니야?
질문을 받고 음... 그래 참 많은 일이 있었지. 그게 좋았던 일에 속하는지 안 좋았던 일에 속하는지조차 구분이 안되게 암튼 많은 일들이 있었지 싶었어. 빡센 가운데 때론 빡치면서 빡빡 기어 온 나날들 속에 좋았던 5가지를 꼽자니 참 궁하긴 하더라고. 그러다가 말했어.
아, 엄마도 꼽을 수 있겠어.
첫째, 여름에 와서 그 해 가을의 첫 추석 때. 둘째, 고 다음 해 설 때, 셋째, 그 해 추석 때. 넷째, 또 다음 해 설 때, 다섯째, 그 해 추석 때. 엄만 캐나다 와서 좋았던 5가지를 2년 만에 다 뽑았숴! 하하하
내게 추석은, 풍요로운 한가위도 아니고, 더도 덜도 말고 그때만 같기를 바라는 이벤트가 아니야. 네버, 에버!
한국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 멀리서 명절을 바라보면서 궁금해지곤 해.
명절에 과연 누가 좋은가. 명절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일단, 보편적으로 봤을 때. 인구 성별 중 절반이 진저리를 친다고 치자고. 거기다 요즘은 예전과 달리 애들도 별로라며? 자꾸 학교 성적이나 진학 따위를 물어대거나 사촌들 간에 비교질을 해대서. 그리고 취준생이나 결혼 연령에 있는 젊은 세대들에게도 부담이라며? 이렇게 꼽다 보면 말이지. 난 또 궁금해지지.
미디어 같은 데서 흔히 명절에 묘사되는 그림 있잖아. 시골, 그니까, 적어도 서울 수도가 아닌 지방 중소도시쯤 되는 곳에 거주하는 여성 노인층과 그 배우자인 남성 노인층이 명절을 앞두고 설렘 속에 분주하게 정성껏 명절을 준비하며 아들 손자며느리 볼 날을 기다린다는 설정. 흔히 우리네 시어머니, 친정어머니, 큰어머니 등의 포지션을 가지고 아무튼 가족구조상 헤드쿼터급 위상을 갖는 이들 말이야. 그들도 진짜 상투적으로 묘사되는 것처럼 가족사랑이 넘치시어 많은 쪽수의 친척들 거둬 먹일 음식 장만하며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으며 그저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인정에 오늘날 큰 손을 자랑하시게 된 거 말이야. 그거 다 진실일까.
듣자 하니 코로나가 이런 명절 풍속도 바꿔놓겠더라? '고향에 가지 않는 것이 효도'라는 캠페인까지 등장했더라고. 고향에 가자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했던 사람들, 갈등을 싹 없애준 셈이잖아?
이번 추석의 경우처럼 코로나 '덕분'에 면하게 되는 게 아니라, 아주 판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한편만 일방적으로 죽어나가는 그놈의 민족 전통 '미풍양속'은 좀 바뀌어져야 한다고 봐. 그리고 남들 인생에 무례하게 오지랖 못 떨어 들썩대는 그 입들 좀 가만두는 연습을 좀 하는 계기가 되면 좀 좋겠냐고.
그나저나, 벌써 궁금해지네. 이번 추석이 지나고 나면 어떨까. 흔히 명절이 지나고 바로 이혼 상담건수가 올라간다는 뉴스가 이번엔 달라질는지.